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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의 이해
Ⅰ. 정주영 그는 누구인가?
Ⅱ. 정주영의 경영철학
Ⅲ. 정주영의 리더십
Ⅳ. 아산 정주영의 업적 및 평가
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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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목차를 보면요 첫번째 정주영 그는 누구인가? 정주영의 경영철학, 정주영의 리더쉽, 아산 정주영의 업적 및 평가, 그리고 저의 생각을 담은 결론 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경영학의 이해
송전소학교 졸업사진
첫 가출해 노숙한 원산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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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고, 송전소학교를 졸업한 후, 농부라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16세에 소 판 돈 70원을 갖고 상경했습니다.그 후 아버지의 설득으로 다시 농촌생활을 했으나 이후에도 2번에 걸쳐 가출을 시도,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했다. 1931년 18세 때 마지막 가출로 인천 부두, 보성전문학교 신축 공사장 등지에서의 막노동꾼 생활을 거쳐 풍전 엿 공장에서 일하던 정주영은 마침내 첫 직장으로 쌀가게인 부흥상회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후 정주영은 이곳에서 특유의 성실함과 근면함으로 주변의 신뢰를 얻게 되고, 마침내 자신이 가게를 인수해 경일상회를 개업하면서 자수성가의 꿈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1939년 일제의 전시 체제령에 따른 쌀 배급제의 실시로 경일상회가 폐쇄된다.
이 사진은 정주영 회장의 송전소학교의 졸업사진인데요 어떻게 정주영 회장이 누구인지 아시겠나요?여기 있는 학생이 당시의 정주영 회장입니다.그리고 옆에 사진은 정주영 회장이 첫 가출하여 친구와 함께 노숙한 원산 일대라고 합니다.
경영학의 이해
1949년 현대자동차 공업사 직원들과 함께
1971년 영동고속도로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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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주영은 자동차 수리 공장을 운영키로 하고 아도써비스를 설립하여 제조업을 운영하는 첫 경험을 쌓게 되지만 이마저도 4년 만인 1943년 일제에 의해 그만두게 된다.
이후 그는 해방 1년이 지난 1946년에 현대 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해 운영하면서, 건설업의 잠재력에 눈 뜨게 되고 현대 토건사(현대건설의 전신)를 1947년에 설립하게 된다. 그는 바로 이 현대 토건사를 기반으로 6ㆍ25 동란으로 인한 전후복구사업을 수행하면서 마침내 한국경제계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각종 다리와 도로, 부두시설 등 전후복구사업을 도맡아 수행하면서 현대건설이 국내건설업계 1위로 올라서자 그는 해외 건설시장 진출이라는 모험을 다시 단행하게 된다. 이와 함께 터무니없다는 주변의 비판과 의혹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과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강(强)한 나라를 만드는 산업인 자동차, 중공업, 전자 등 국가기간산업 분야에 과감히 진출, 우리나라 중화학공업 분야를 개척해 나가기 시작한다.
위 사진은 1949년 지금 현대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 공업사 직원들과의 사진입니다. 그리고 옆 사진은 영동고속도록 현장에서 박정희 대통령과의 대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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