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의 전 생애를 4기로 나누면 제1기(1904~1926)는 유년시절부터 4년 남짓의 프랑스, 1년의 소련 유학 시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해외에서 공산당원에 입당하고 약간의 초기 활동을 벌인 시기이다. 제2기(1927~1949)는 유학하러 나간 외국에서 귀국한 등소평이 중앙당의 지시에 따라 지하공작을 벌이는 시기부터, 강서 소비에트 시기, 장정 참가시기, 군 정치 위원으로서 항일 무장투쟁과 국공내전에 참여한 시기를 포함한다. 등소평이 군사적, 정치적 능력을 발취하면서 당원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시기에 해당한다. 제3기(1950~1977)는 중공 정권 수립 이후 지방과 중아에서 고위 정치가로 활약하던 시기다. 내전 승리 직후 서남 군부를 총괄하던 등소평은 1952년 중앙 정치무대에 등장하여 당의 고위지도자로 급성장하게 된다. 신생 국가의 건설 사업에 종사하면서 등소평의 실용주의적 노선이 이미 형성되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모택동과 갈등, 그에 따른 정치적 부침이 거듭되던 시기다. 마지막 제 4기(1978~1997)는 세 번째 복권된 등소평이 모택동 사후에 권력을 장악하고, 개혁 개방을 추진해 나가던 시기다.
등소평은 1920년대부터 지하활동을 시작으로 초기 공산혁명운동의 대열에 참가하였고, 1930~40년대에는 항일전과 국공내전에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였던 군사 지도자였고, 건국한 뒤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중앙정치 무대에 등장하여 모택동ㆍ주은래유소기 등 중국 최고 지도자들과 신생 중국의 방향을 결정짓는 과정에 깊이 관여하였다. 그 과정에서 3상 3하(三上三下: 세 번의 실각과 세 번의 재기라는 의미) 부도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이렇게 여러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쌍아올린 등소평의 경험과 리더십이 모택동 사후 중국의 대변혁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1989년에 군사 중앙위원회 주석직을 사임함으로써 모든 공식적인 지위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원위와 인맥을 통하여 막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다가 1997년 2월에 마침내 생을 마감한다.
Ⅱ.본론
1) 유년 및 유학시기 (1904~1926)
등소평은 1904년 8월 사천성 동부의 광안현 협흥 지방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등소평은 아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졌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근대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프랑스 유학도 할 수 있었다. 중경에서 예비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 9월 프랑스로 그는 유학을 떠나게 된다. 등소평을 비롯한 프랑스 유학생 일행은 중불 협회의 지원으로 몇 달 동안 불어 교육을 받은 뒤 공장 노동자로 취직해서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험난한 유학생활을 시작하였다. 견디기 어려운 중노동과 저임금, 실직과 기아 등 온갖 고생을 감내해야 하는 생활은 어린 등소평에게 비참한 노동자의 생활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하였다. 이러한 생활로 그는 사회에 대해 급진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고 공산주의자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등소평은 프랑스유학시절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평생의 동지요 지원자가 되었던 주은래를 만나게 된다. 그는 1922년 공산주의 청년단에 참가하였다가 1923년 6월에 ‘중국인 사회주의 청년 동맹’ 유럽지부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등소평은 1924년 말 청년동맹의 모기관인 중국 공산당 유럽지부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공산당원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1926년 말 다른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몽고를 거쳐 중국에 귀국하게 된다.
2) 혁명활동과 전쟁 참가 시기 (1927~1949)
귀국한 등소평은 처음에는 국민 혁명군 산하 제7군에서 공산당 대표로 정치공작을 맡았다. 동시에 풍옥상이 서안에 설립한 중산군사학교의 교육장 일도 맡았다. 1차 국공합작이 실패한 이후 등소평은 풍옥상 휘하의 군을 이탈하여 중국 공산당 중앙당이 있는 호북성의 한구로 갔다. 거기서 그는 잠시 중앙 공산당 중앙위에서 근무하다가 당 지도부가 1927년 겨울 상해로 옮겨감에 따라 같이 가서 당의 중앙기관에서 비서장으로 근무하였다. 당 중앙 군사부장이던 주은래의 힘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당시 상해는 장개석의 국민당군이 공산 당원에 대한 색출, 숙청 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었으므로 그도 신분을 숨기고 공동 조계에 머물면서 지하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 중국 근대화를 이끈 걸출한 인물들, 이병주, 지식산업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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