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 한국 사세도 정치의 성립과 운영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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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육학 한국 사세도 정치의 성립과 운영구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9세기 전반의 정치를 전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처음으로 ‘勢道’라는 용어가 쓰여진 것은 박제형(朴齊炯)의 『近世朝鮮政鑑』에서였다. 즉 “조선에서는 정권을 世道라고 하며 어떤 사람이나 집안이 그것을 가지는데, 왕이 세도의 책임을 명하면 지니고 있는 관직에 관계없이 의정 판서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고, 국가의 중대사와 모든 관료의 보고를 왕보다 먼저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설명은 대개 그대로 이어져, ‘勢道政治’가 순조헌종철종 연간의 정치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다만 ‘세도정치’의 ‘세도’는 ‘世道’라는 말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勢道라고 표기하여 조광조정인홍송시열 등의 정치적 역할을 설명하는 데 쓰인 ’世道‘와 질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조선 중기의 붕당정치적 질서에서는 勳臣과 더불어 戚臣의 정치 참여가 적극적으로 견제되었다. 하지만, 순조 초년까지는 국정에서의 훈척의 의미를 중시하는 인식과 함께 훈척의 정치 참여를 경계하는 전통적인 인식도 강하게 존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척신의 공식적인 정치참여가 점점 자연스러운 것으로 굳어져 갔다.
(2) 왕권의 약화와 붕당의 퇴조
권세가의 권력 독점은 국왕권의 약화와 짝을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급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매우 낮았던 것으로만 치부되어 온 세도정치 시기 국왕의 위상은 그리 쉽사리 재단할 수 없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 예로 먼저 선대 국왕에 대한 世室의 의례를 들 수 있다. 16세기 선조 이전까지의 국왕들 중에는 재위 기간이 짧은 임금은 물론 태종명종과 같이 긴 기간 동안 재위한 임금으로서도 제외된 이들이 있지만, 선조 이후 영조까지는 실제로 재위를 인정받았던 임금은 경종을 제외하고 모두 세실로 받들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세실로 정하여지는 시기의 면에서 더욱 확연하게 나타난다. 역대 국왕이 죽어 세실로 모셔지게 되는 것은 뒷 시기로 내려올수록 점점 발라지는 추세를 보이다. 숙종까지만 하여도 몇 대 뒤에 결정되었으며, 다음 왕인 정조 연간에 결정이 된 영조의 경우에도 사후 6년의 기간이 요구된 반면, 순조의 경우에는 사망 다음 해에 결정되었다.
국가 전례상의 존숭과 더불어 임금에 대한 매우 높은 평가가 일반화되었다. 앞 시기 영조가 신하들로부터 요와 순에 비견된다는 의미의 堯明舜哲 이라는 존호를 받아낸 것은 강요하다시피 했던 어려운 일이었으나19세기에는 군주을 동양 전래의 이상적이 인물로 직접 비겨 높이는 일이 빈번해졌다. 예컨대, 순조 즉위년 11월에 이병모(李秉模)는 정조의 치적을 일컬어 “요순과 짝하며 三代만큼 탁월하다.”고 하였다. 조만영은 헌종 즉위년에 순조를 세실로 모시자고 하면서 그를 추키기를, “堯舜의 道心에 접하였고 曾參과 민자건(閔子蹇)의 효를 갖추었으며 禹王文王湯王 의 미덕을 겸하였다.”고 하였다.
한편 그 시기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국왕의 권위는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물론 19세기의 권력자는 조선 후기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명분과 세력을 누려 온 가문에서만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힘과 권위만으로 그만한 권력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김조순조인영 등은 물론, 그 후손들까지도 그들이 국왕의 인척이거나 그 유촉을 받았다는 것을 이용하여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와 같은 명분이나 형식상의 높은 위상이 실제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 계속되어 온 군주체제의 관성에 의하여 시행되었던 世室禮 등의 전례가 국왕의 실제 권력을 보장해주는 것일 수는 없었다. 선왕을 세실로 모시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추진하는 인물의 권위를 높이는 데 이용되는 하나의 관례적인 현상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정치 현실에서 국왕의 권위는 관념적으로 상당히 강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선왕에 대한 것으로서, 화석화된 선왕의 강조가 재위중의 국왕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