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생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교육으로부터 시작된다
평소에 한국의 공교육의 실태를 심각하게 생각해왔었다. 흔히 입시지옥이라고 말을 하는 입시제도는 한국의 고질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매우 많지만 지금은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입시제도로 인하여 일어나는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학원열풍으로 인한 공교육의 위기를 말할 수 있다. 입시제도로 인해 수많은 학생들이 진학을 위하여 학원에 다니는 것을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학원과 학교의 교육이 균형이 있다면 위기가 없을 텐데, 한국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인가? 언제부터인가 학교교육의 중요함이나 비중은 사라지고 학원교육이 학생들의 교육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결국 공교육의 위기란 말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다음으로 창의력이 없는 교육이 문제이다. 쉽게 말하면 주입식교육이 문제인데,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한국교육은 어쩔 수 없이 창의성보다는 정답을 요구하는 교육을 시행할 수밖에 없다. 마치 행동주의 학습방법처럼 한국이란 사회에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찍어내는 데에 급급한 것이다.
마지막 문제를 언급하자면 열정 없는 교사를 들 수 있다. 최소한 학원 강사보다는 열정이 있어야할 텐데... 아쉽게도 열정이 없다는 것은 현실의 아픔이다. “교사의 열정과 노력에 따라 학생들의 수준이 정해진다.”고 말을 해도 부족하지 않다. 마이클 커제스, 조셉 레이든이 지은 달만큼 큰 미소를 보면 교사의 열정은 학생들에게 바른 꿈을 제시할 수 있으며, 수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게 여기지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교사의 열정과 노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교사의 열정은 학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외면한다.
이러한 색안경을 가지고 실습을 시작하였다. 참 다행스럽게도 일반 사립학교와는 달리 미션스쿨이라 그런지 굉장히 진보적인 교육을 시행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보적인 교육이란 교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교육이 아닌 학생스스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능동적 학습을 말한다. 또한 교사와 학생이 나와 그것의 관계가 아닌 나와 너의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교사가 학생의 눈높이를 생각하며 교육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었다. 학습자 능동적 수업을 시행하려 노력했던 수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가장 특별했던 수업은 음악시간이었다. 도입, 전개, 절정, 심화, 정리까지 물 흐르듯 완벽한 수업이 아닐까? 생각하지 못할 만큼 도전되었던 수업이었다. 학생들 한명, 한명 이름을 불러주면서 인사를 함으로 수업을 진행하였으며, 가요에 물든 학생들의 선입견을 철저히 무너뜨리며 동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전달하는 모습은 최고의 모습이었다. 이밖에도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게 적절한 농담을 섞으므로 흥미 있게 수업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음악시간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수업이 진행되며, 개인차로 인한 학생들을 세심히 관찰하여 수정해주는 수업이었다.
다음은 종교수업이었다. 종교수업은 영상매체를 통하여 수업이 진행되었다. 영상매체를 통하여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영상이후에 학생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피드백이 가능한 수업이었다. 학생들의 현 상태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학생들이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알 수 있는 수업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영상으로 기독교의 경전의 존재에 대해서 대략 설명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학생들의 궁금증은 배가 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종교수업은 성공적?이지 않을까? 하여튼 종교수업에서 보편적으로 본받을 요소는 피드백의 활성화이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수업들이 매체사용이 활성화가 되었음을 여러 교사들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면서도 노력하면서도 바르게 고쳐지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다. 공교육의 위기? 이것은 더 이상 위기가 아니다. 이 학교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삼는 듯 하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소외된 몇몇 학생들이다. 소외된 학생들이란 학생들의 입장에서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미처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학생이나 포기한 학생, 혹은 차별받는 학생이나 학생의 가능성은 무한한대 교사의 임의로 제한된 학생을 말한다. 각 반마다 이러한 학생들이 많지는 않지만 없지도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소외된 학생들이 왜 생겨나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근원적인 문제로 교사의 부재를 들고자 한다.
정복성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학원과 학교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학원은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지만 학교는 지식과 더불어 인성을 가르치는 곳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마음 깊은 곳에 울려 퍼졌다. 이것은 학생들이 먼저 사람의 됨됨이가 되게 하는 것이 학교라는 말이다. 여기서 생각해보면 학생들의 인성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사의 헌신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즉 교사의 사명은 교육의 핵심인 것이다.
교육의 핵심이 교사의 사명이라면, 교사의 부재는 교육의 핵심이 놓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교사의 지침을 몇 가지 서술하고자 한다. 파커 J. 파머, 이종인 역,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한문화, 2000. 참고.
첫째, 교사의 마음이다. 훌륭한 가르침은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에서 나오며, 보다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며, 이 때 학생들이 마음을 연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에게 결과물만 요구해서는 안 되며 내면적인 진리를 일깨워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높이 교육과 교사의 성품이 중요하다. 한 가지 추가하면 학생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외부에서 내부로 작용하지만, 권위는 내부에서 외부로 뻗어나간다. 즉 권력이 아닌 권위. 학생들에게 얻어지는 권위를 가지고 학생들을 대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공포의 문화를 이겨내야 한다. 교실에 들어설 때... 학생들을 만나러 갈 때... 두려움을 느끼는 교사들이 많다. 만약 교사가 공포를 느낀다면 교육현장은 마비되어버린다. 공포를 느끼지 않기 원한다면 학생들의 다양성을 인정해야하며, 수많은 갈등에 대한 문제와 혹시나 찾아올지 모르는 교사 자신의 정체성 상실의 문제를 점검하기 바란다. 이때 학생에 대한 교육에 대한 공포를 넘게 되고 학생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셋째, 창조적인 교사가 되어야 한다. 교사의 창조적 재능은 학생들과 함께 춤출 수 있게 만들며 동시에 가르치고 배우는 상황을 만드는 능력이다. 또한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훌륭한 교사는 여유를 잃지 않고 창조적인 대응을 할 수가 있다. 결국 창조적인 교사는 학생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으며 학생들의 수업뿐 아니라 개인적 상담까지 매우 효과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넷째, 친밀성과 상호작용이다. 친밀성은 학생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친밀성을 통하여 치료해주는 것을 의미하며, 상호작용은 친밀하지 않은 학생 혹은 교사들끼리 모여 공동으로 자신들의 영역과 자원을 공유하면서 상호간의 갈등과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파커 파머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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