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게긴시치창조교육론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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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나게긴시치창조교육론 해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이나게 긴시치(호는 소후詛風)는 1887년(明治20)에 야마가타현(山形縣)에서 태어났다. 고향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대용 교사를 한 후, 도쿄로 올라와 와세다대학에 입학하고, 서양철학을 전공하여, 1912년에 졸업하였다.
처음에는 「중앙공론(中央公論)」의 기자가 되었다가, 독립하여 교육잡지 『창조』를 발행하며 경영하였다. 그러는 동안 철학적인 교육론을 내용으로 하는 저서를 몇 권 저술하고, 1921년(大正10)에는 스스로의 교육이론을 ‘창조교육론’이라 명명하여 발표하였다.
나중에 약 2년간 독일에 유학하여, 철학과 교육학을 배우고, 귀국후인 1927년(昭和2)부터 와세다대학의 강사가 되었다가 1946년에 서거할 때까지 교단에서 교육학 교수로서 저술에 힘썼다.
『8대교육주장』에 게재된 이나게의 ‘창조교육론’을 요약하여 보자. 우선, 창조교육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고 하겠다.
“창조교육은 창조라고 하는 원리를 갖고서 교육의 전체를 설명하고 규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마디 설명을 더 추가하면 교육학에 대한 저의 태도는 교육학을 단지 그냥[單なる] 과학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교육학을 규범적 과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단지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므로 설명하고 또한 규제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즉 ‘창조’라고 하는 다만 하나의 원리를 갖고서, 창조 한 가지에만 주목하여 수신 교수이든지, 체육이든지, 재봉이든지, 교육자가 영위(營爲)하는 어떠한 작용이든지, 교육자의 생활이든지, 이 모든 것을 창조의 한 가지에 의거하여 설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창조라고 하는 개념의 설명을 하는 것은 ‘자유’, ‘신(新)’, ‘가치’의 세 가지를 본의(本義)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1조항 즉 목적 이상에 관해서 교육은 말할 것도 없이 창조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방법 수단에 있어서 앞에서 말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알맞은 것을 선택하는 것을 주안으로 합니다. 그렇다면 목적 달성에 알맞은 방법 수단은 무엇인가를 말해야 합니다. 여기서 제3요소의 동력에 관계하며, 가게[參る]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말해보라고 한다면, 동력을 교육자, 피교육자라고 말하는 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후에 상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철저하게 (문제의) 근저로부터 보는 관점은 아닙니다. 교육자와 피교육자라고 하는 입장에서 교육을 생각하고 있는 한, 약간 과장되게 말하면 천년을 기다려도 교육의 명료한 개념은 알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교육의 동력을 가지고 창조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관하여도 간단한 설명은 후에 덧붙이고자 합니다. 교육의 방법 수단은 창조라고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동력 즉 창조성을 가장 유효하게 발동시키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게 됩니다.”
창조의 자유성이란 동적(動的)인, 부단한 자기 초월을 하는 기능이라고 한다.
“우리들의 생명은 창조적 진화이다. 우리들의 생명은 마르지 않는 강물이 [#89]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은 상태이다. 창조라고 말하는 한, 그것은 영속적으로 이어져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에, 한 단계의 창조를 끝내고 담배 한 대 피우는 상태는 참된 창조가 아니다. 창조 그 자신의 힘으로 부단히 자기 초월을 하는 것, 그것이 자유의 진정한 뜻[본의(本義)]이다. 창조의 자유성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그 자신의 힘으로 그 안에 갖고 있는 힘으로 창조를 하고, 그리하여 창조의 결과가 다시금 또 다시 자기를 초월하는 성능(性能)이다.”
제2의 계기인 ‘신(新)’에 관해서는, 내용적인 의미가 덧붙여져서, 독자성이라고 할 정도의 의미에 가깝다.
“창조라고 말하는 한, 반드시 찰라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영원적으로도 새로운 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한번 창조된 것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맛[미(味)]이 없어지게 되고, 따라서 창조의 맛[미(味)]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창조의 본질이 높고 내용이 풍부하다면, 공부자(孔夫子=공자)가 가르쳐 주신 것과 같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