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학의교육과정과 그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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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사 학의교육과정과 그 특징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고려시대의 교육제도를 구분하면 크게 관학과 사학으로 나눌 수 있다. 관학으로는 태조 13년 태조가 서경에 가서 학교를 창설한 기록이 보이는데, 그것을 시작으로 성종 11년 국자감을 서경에 설치하였다고 전해진다. 관학은 고려 최고의 교육기관인 국자감을 비롯하여 원종 2년에 설치한 중등교육기관에 해당하는 동서학당, 고려 말 전문교육기관으로 설치된 10학, 그리고 향교가 있다. 사학으로는 개경에 12공도와 지방에 서당이 있었다. 서당은 각 지방 곳곳에 있던 사학으로서 민간의 미혼자제들을 교육하는 보통교육기관이며, 12공도는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12개의 사학을 말하는 것으로, 대개 문종 때 설립되어 공양왕 3년까지 지속되면서 고려의 교육에 크게 공헌하였다.
사학 12공도는 최충이 문헌공도를 설립하면서부터 개경에 하나 둘씩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최충은 국자감이 있기는 하나 그 존재만 있을 뿐 국립대학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자 실력을 갖춘 유능한 관료를 양성하고자 사학을 개설하였다. 최충이 설립한 이 사학을 그의 시호 문헌공을 따서 문헌공도라고 부른다. 문헌공도를 필두로 하여 문종대부터 숙종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수의 사학이 설립이 되었고, 이 사학의 설립자들은 대부분 과거시험의 시험 관인 지공학 출신들이었다. 당시 향학열에 불타고 있던 과거지망생들은 심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과거에 도움을 받고자하였고, 때문에 사학의 문이 열리자 많은 수의 학도들이 운집하게 되었던 것이다. 거란의 침입으로 혼란해진 고려사회는 사학이 발달하면서 쇠퇴한 학문을 다시 일으키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고려의 유학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2. 설립 배경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삼국시대부터 이루어져 이어왔다고 볼 수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은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위하여 관료체제, 수취체제, 군사조직 등의 국가체제의 정비를 단행했다. 이러한 국가체제의 정비는 각종 조직에서 전문화된 역할을 하며 그 조직을 운영하고, 유지, 존속시킬 수 있는 인재의 양성, 즉 관리의 양성을 필요로 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전래된 유교와 불교는 한반도에 형식교육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교는 학교를 설립하게 하였고, 불교는 사찰을 건축하게 하였다.
고려 왕조에 들어와서도 유교를 실용적 가치를 지닌 학문으로 인식하여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은 일찍부터 설치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기사를 보면, 태조 13년 이전에는 서경에 아직 학교가 없었는데 태조 13년 12월에 이르러 서경에 학교를 창건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후에 서경의 학교는 성과가 커서 태조는 비단을 내려 그 성과를 권장하고 또한 곡식을 하사하며 학보를 삼게 함으로써 장학에 힘썼다. 이상의 기록들은 고려가 건국 초부터 교육기관을 설치하여 교육을 장려하였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그러나 고려왕조의 교육발전의 본격적인 계기는 성종대에 실시되기에 이른다. 성종은 태조로부터 이어져 오던 학문의 권장정신과 그 교육 사업을 이어받아 교육 분야를 괄목할 만큼 발전시켰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려주는 내용이 다음의 기록이다.
A (성종) 5년(986) 7월에 명령하기를 “…학교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과목으로 시험을 쳐서 이를 뽑기로 하였다.
B (성종) 11년 12월에 관계 관리에게 명령하기를 “경치 좋은 장소를 택하여 서재와 학교를 크게 세우고 적당한 토지를 주어서 학교의 식량을 해결하며 또 국자감을 창설하라”고 하였다.
A의 성종 5년 기사를 보면, 성종이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고, 시험을 통해 이러한 인재를 뽑기 원하는 뜻을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C의 기록을 보면 학생들의 교육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엄격한 규정도 함께 세워 교육의 부진 가능성을 경계하였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성종은 마지막 기사에서 나타나 있듯이 수도의 관학을 종합대학으로 발전시켰다. 즉, 성종은 11년에 국자감을 창설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고려는 건국초기부터 관학을 장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의 후원아래 출발한 국자감은 고려왕조 내내 튼튼하게 운영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