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교육 사암 흑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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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 교육 사암 흑 시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유럽의 중세 시대를 암흑시대라고 부르는 가장 큰 이유는 로마 제국 멸망 후 교회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강해서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면에 있어서 큰 발전이 없이 침체된 시기로, 고전문화와 르네상스문화는 다른 이질적 문화라는 시각에서 중세를 비난·경멸하면서 사용한 말이다. 그러나 중세사연구의 발전결과로 많은 역사가들은 한 시대를 창조시대의 반대급부로 경멸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중세가 지니는 개성적 의의를 인정하게 되었다. 오늘날 이 말은 잘 사용되지 않으나, 로마 붕괴 후 600년 동안 역사적 증거가 불충분하다 하여 특수한 의미에서 암흑시대라고 부른다.
① 교회의 부속기관으로서의 학교
1) 시대적 상황
- 문법과 수사학을 가르쳤던 여러 도시의 공공학교들의 자취를 감추고 교사가 사라짐.
- 사회적 조건이 안정되고 옛날의 학문이 교회 안에 재창조됨에 따라 모든 지역에 교회 산하의 학교가 생겨나서 11세기경에는 유럽의 대부분 지역에 교육의 수단이 제대로 갖춰졌으나, 새로 일어난 교육은 그 정신이 옛날교육과 동일하지 않음
- 로마의 학교는 세속적인 목적을 가졌고, 그 학교가 배출한 인물들의 문학과 웅변술에 정통하여,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그들이 법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도시와 국가에 봉사하는 데에 도움이 됨.
2) 교육의 목적
- 신앙에 도움이 되는 교육: 교육의 목적은 본질상 현세가 아닌 내세에 있어서 형식 여하를 막론하고 궁극적 이유는 교육이 신앙에 도움이 되어야함.
- 배운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 교양을 갖춘 실무가가 아닌 교육을 받은 성직자
3) 교육의 방향
- 교회는 그 신앙과 맞지 않는 새로운 철학과 과학에 대해서는 부정적.
참고문헌
* 참고자료
1. 카시오도루스 [Flavius Magnus Aurelius Cassiodorus, 490 ?~585 ?]
로마인으로서의 마지막 정치가이자 역사가. 콘술, 친위대 장관을 지냈고 수도원을 세우고 저술에 전념, 중세 수도원의 연구생활의 기틀을 이루었고, 《연대기》등의 저서를 남겼다.
국적: 이탈리아 동고트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연대기》,《잡록(雜錄)》,《고트사(史)》
남이탈리아의 명문 출신으로, 라벤나가 수도였던 동(東)고트의 왕 테오도리쿠스를 섬겨, 514년 콘술, 533년 친위대 장관이 되었으며, 550년 이후 수도원을 세우고 저술에 전념하였다. 수도승들에게도 그리스 고전의 필사(筆寫)와 라틴어역을 시켜 중세 수도원의 연구생활의 기틀을 이루었다. 주요저서로 《연대기》 《잡록(雜錄)》 《고트사(史)》, 그 밖에 일종의 백과사전 등이 있다.
2. 성베네딕투스 수도회
535~540년 경 성(聖)베네딕토가 창립한 수도회.
구분: 수도회
설립연도: 535~540년 경
소재지: 이탈리아
설립목적: 복음에 바탕을 둔 자기 향상
주요활동: 교육·학문·선교·교구 활동
베넥딕도회라고도 한다. 넓은 의미로는 베네딕토가 창립한 베네딕토 수도회칙에 따르는 모든 수도회를 가리키나, 좁은 의미로는 솔렘 연합회·수비아코 연합회·몬테카시노 연합회·오딜리아 연합회·올리베타노 연합회·카말돌리 연합회·실베스트로 연합회·발룸브로사 연합회 등 약 15개 수도원의 총체를 가리킨다.
베네딕토는 535∼540년경 자신이 속해 있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을 위해 성 베네딕토의 규율을 작성하였다. 이것이 이탈리아와 갈리아 지방에 확산되어 수도원 운영과 정신적·물질적 복지의 근간이 되었다. 베네딕토 회칙의 계율을 따르고 한 군데에 정착하여 공동생활을 영위한다. 또 노동과 기도를 통하여 복음에 바탕을 둔 자기 향상에 매진하는 수도자의 모임으로, 각 수도원은 수도원장을 우두머리로 하여 독립된 가족을 이루고 있다. 그밖에 교육·학문·선교·교구 활동 등에 종사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초기에는 많은 선교사를 배출, 서유럽의 그리스도교화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베네딕토 수도원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클뤼니(Cluny)의 부르고뉴(Burgundy) 수도원이었다. 이는 유명한 클뤼니의 수도원 개혁의 중심으로 교회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학문을 존중하여 민족이동에 의한 황폐기에도 많은 문헌을 보존하는 한편, 중세에는 사본 제작 등으로 문화의 유지 발전에 노력한 업적이 크다. 종교개혁 후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었으나 19세기 중엽부터 다시 번창하였다. 현재 세계 각지에 수도원을 두고, 교육사업과 전례의 보급·개혁 등에 힘쓰고 있다.
7세기 무렵 베네딕토의 누이동생 스콜라스티카가 세운 베네딕토 여자수도회도 있다. 이 역시 베네딕토 회칙을 준수한다. 한국에는 1909년 독일 베네딕토회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5명의 수도자를 서울에 파견하여 교육사업을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본원인 왜관을 중심으로 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서울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시토회(트라피스트)·엄률 시토회(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등이 있는데 시토회와 엄률 시토회는 베네딕토 수도규칙을 따르지만 베네딕토회에는 속하지 않는다.
주로 중고등학교·출판사·인쇄소·유리화공예실·시청각연구회·피정의 집·양로원·목공소 등의 일을 한다. 서울·부산·대구에 있는 분원에서는 피정의 집·종교미술연구소·가톨릭 교리 통신 교육회·가톨릭 신학원 등을 운영한다.
3. 이시도레 [Isidorus Hispaleusis]
에스파냐의 성직자·사상가(?560~636). 세비야의 대주교로 에스파냐의 가톨릭교회 발전에 공헌하였고 학문의 진흥에 힘썼는데, 그의 저서 《어원지(語源誌)》는 중세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저서에 《연대기》, 《서고트사》 따위가 있다.

이홍우 외 역(2008), 윌리엄 보이드 『서양교육사』, 교육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