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초기 공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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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공리주의 초기 공리주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철학적 경험론은 19세기 중반의 영국에서 여전히 살아 있었고 크게 성행했다. 19세기 영국 철학은 흄의 근본적 회의론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흄은 비록 인과성, 자아, 외부 세계에 관한 진정한 앎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그 분야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지식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으며, 그것을 경험에 뿌리를 둔 합리적인 믿음 체계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흄 사상의 비교적 실용적인 측면으로부터 파생된 지적 전통을 물려받은 사람들이 바로 공리주의자라고 알려진 이들이다.
◎ 초기 공리주의
제레미 벤담과 제임스 밀은 공리주의를 공동 신조에 대한 충성스러운 헌신으로 해외에 전파해야 할 복음이라고 생각한 철학적 급진주의자들이라는 이름의 큰 그룹의 두 철학적 지도자였다.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이래, 진정으로 독립적인 정신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병폐를 고치는 구제책으로서 하나의 공통되는 철학적 주장을 지키기 위하여 모인 일은 없었다.
먼저 초기 공리주의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해 이를 대표하는 벤담이 제시한 공리의 원리와 쾌락의 계산에 대해서 알아보고, 제임스 밀이 주장한 관념연합설의 심리학을 알아보자.
벤담은 당시에 도덕과 정치에 관한 글 속의 여러 유행어를 배척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도덕감’에 호소하는 것은 편견들을 덮어놓고 유지하려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에게 있어 상식의 원리는 그저 풍습인 것을 과학적으로 확립된 결론으로 혼동한 것이요, 신학자들의 교훈은 애매한 지적 내용이 조금도 없는 애매한 감정적 연상을 붙여놓은 것일 뿐이었다. 이런 불확실한 사상들 대신에 벤담이 제시한 올바른 행위의 기준은 공리(utility)의 원리, 즉 최대 행복의 원리이다.
공리의 원리는 유용성을 기준으로 하여 어떤 행동을 당사자의 행복을 증대시키느냐 감소시키느냐에 따라 판정하는 원리이다. 여기서 행복이란 쾌락인데, 많은 쾌락과 이에 따르는 여러 고통으로부터의 가급적인 자유에 대한 집합 명사이다. 이에 반대되는 불행은 고통으로서, 고통이 압도적으로 많은 의식 상태에 대한 집합명사이다. 벤담은 이 원리를 개인의 행동뿐만 아니라 정부의 시책에 대해서도 적용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 쾌락을 어떻게 증대시킬 수 있는가? 쾌락을 증대시키는 데에는 감각부(富)재주자선악의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모든 쾌락은 그 자체로는 선하지만, 이 여러 방법 중에서 많은 사람들의 쾌락이 인과적으로 생겨나므로 쾌락을 최대화하고 고통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인도하는 이성이 요구된다.
공리의 원칙에 따른 방법을 선택하는 데에는 행위에 따른 쾌락의 양과 고통의 양을 정확히 측정하는 계산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에 벤담은 쾌락과 고통을 측정할 일곱 가지 관점을 제시하였다. 이는 쾌락과 고통의 강도 지속성 발생의 확실성 근접성 다산성(多産性)(동일한 종류의 감각이 뒤따를 가능성) 순수성(반대되는 종류의 감각이 뒤따르지 않을 가능성) 범위(그것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각 사람의 경험에 있어서의 쾌락의 질)이다.
벤담은 공리의 원리를 증명할 수 없으며, 증명이 불필요하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초기 저술에서는 공리주의가 영향을 받은 바 있는 흄이 이 원리를 증명했다고 썼다. 이 증명의 내용은 아마도 흄이 도덕적인 감정들의 좀 더 궁극적인 기준(도덕적 정서)으로 목적을 선별하고 그 목적을 위한 수단들을 잘 선택하기 위해 공리를 사용했다는 점에 있어보인다.
※ 쾌락의 계산
모든 쾌락은 그 자체로는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