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가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중학교로 진급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어 왔었고, 나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 모두들 그렇게, 무조건 학교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착실히 수행해왔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무 의식 없이 순차적으로, 시간에 맞춰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교육을 받아오면서 정말 그 시간만큼 착실히 교육받아온 것인지 의문이 든다. 혹시 나는 남들 앞에서 이야기 할 만한 화젯거리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는, 대학생이라는 이름만 가진 ‘겉모습만 지식인’이 아닐까…….
지금껏 당연하게 받아왔던 공교육과 의무취학 등의 문제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면서, 이반일리치의 생각을 간단히 정리하고, 요즘 점점 부각되고 있는 ‘대안학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자 한다.
2. 敎育社會에서의 脫出 -Ivan Ilich-
2.1. 學校는 왜 廢止돼야 하나
이반일리치는 제도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에토스까지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사회전체의 평등과 복지를 위해 공교육제도와 의무취학제도를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빈 껍데기일 뿐, 학교에 보냄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교육을 받도록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제도상으로는 부유층 아동이건 가난한 아동이건 모두에게 기회 균등한 교육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교육내용이 모두에게 만족스럽고 적절할 수는 없다.
아동을 의무적으로 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은 목적 실현의 과정과 목적과를 혼란시키는 것이다. 아동들은 수업과 학습을 혼동하게 되고, 진급한다는 일 자체가 그만큼 교육을 더 받은 것으로 생각되고, 면허를 얻게 되면 그만큼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상실되고 아동의 상상력도 되어서 가치대신 제도에 따른 봉사를 당연한 일로 느끼게 된다. 아동을, 특히 가난한 아동을 의무취학 하는 제도는 사실상 교육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의 성과와는 상관없이 겉으로는 잘 교육되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교육뿐만 아니라 현실의 사회 전체가 학교화되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사람들의 잠재적 능력을 미개발 시킨 채 그냥 두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복지 제도상의 훌륭한 보호조치는 그들로 하여금 더 많은 혜택을 바라도록 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으며, 그들에게 자신들의 지역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경험과 자산을 바탕으로 해서 스스로 생활을 조직해 가는 능력을 점점 더 상실케 하는 것이다.
어떠한 나라에서도 학교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서도 빈민은 그들 자신의 학습을 스스로 컨트롤할 용기가 좌절되고 있으며, 또 그것이 무능화되고 잇다. 이 지상에서 학교는 사회에 대해서 반교육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학교는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시스템으로 인정되고 있는 이상, 학교가 교육에 실패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은 교육이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든가 복잡하고 언제나 문외한에게는 알 수 없는 것이며 때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학교는 교육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자금, 사람, 그리고 신용을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 이외의 다른 사회제도가 교육에 대해 손을 대는 것을 단념토록 하고 있다. 노동, 여가활동, 정치활동, 도시생활, 그리고 가정생활까지 일체 교육수단으로 쓰이는 것을 거부하고 그것에 필요한 관습이나 자식을 가르쳐 주는 것을 학교에 맡기는 것이다.
의무취학을 하게 되면 사회는 자연히 극단적으로 나누어지게 마련이다. 또 세계적으로 말하더라도 의무취학을 기준으로 하는 국제적 서열에 따라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등급이 형성된다. 교육기회를 평등화한다는 것은 분명히 바람직한 일이며, 실현 가능한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을 의무취학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영혼의 구제와 교회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Ivan Ilich, 「敎育社會에서의 脫出」, 서울 : 汎潮社,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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