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나야 빨랴 나의 교육개혁가톨스토이
1851년에는 카프카스로 가서 입대를 했다. 카자흐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쓴 단편소설『카자흐 사람들』(1863년)은 약아빠진 모스크바 젊은이의 나약함과 정력적인 자연 그대로의 카자흐 사람들의 삶을 비교하고, 동정과 깊은 시적인 사실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자서전 『유년시대』(1852), 『소년시대』(1854), 『청년시대』(1856)를 완성하였다. 이 작품들은 그의 크림전쟁 참가에 바탕을 둔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처럼 갈채를 받았다. 1856년(28세) 톨스토이가 페테르부르크에 돌아와 농민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졌다. 1858(30세)년 농민의 아들에게 야학식 교육을 시작하며 국민 보통교육 초안을 기초하고 『국민교육론』을 기초한다. 1857-1861년 동안 프랑스, 독일 초등학교를 방문하고 난 후, 1861년(33세)에 ‘야스나야 빨랴나’라는 농민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 ‘야스나야 빨랴나’를 발행한다. 34세에 『국민교육론』, 『읽기와 쓰기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훈육과 교육』, 『누가 누구에게서 쓰기를 배워야 할 것인가』등의 논문을 발표하고, 1862년(34세) 당시 18세인 소냐와 결혼하여 13명의 자녀를 둔다. 그리고 1860년대부터 집필에 전념하여 『코사크』『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니나』, 『부활』 등 많은 작품을 썼다. 1876(48세)에 이른 바 ‘내적위기’ 즉 정신적인 전환이 시작된다.
1885년(57세)부터 귀족 신분을 벗어버리고 ‘검소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맨발에다, 당시 러시아의 농민들이 입고 다니던 작업복을 입고 다녔고, 먼 길을 자전거와 도보로 여행하기도 하였다. 1891년(63세)부터는 자가의 거의 모든 재산을 부인과 자녀들에게 넘기고, 자신의 마을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농부들을 교육하고, 채식주의와 결혼, 종교에 대한 저작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추구하여, 지주제를 엄청난 죄로 간주하면서 스스로 육체노동을 하였고, 불필요한 욕구를 없애려고 하였으며,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살생을 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였던 톨스토이는 정치적으로는 징병제와 파괴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양심적 병역 거부, 절대평화주의, 무저항주의를 옹호하였다. 톨스토이는 마을 초등학교에서 직접 가르치면서 자기 사상을 사회적으로 실천하였고, 재산을 소유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상금 때문에 노벨상 수상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1899년 그이 나이 71세에 『부활』을 발표한다. 하지만 부활의 인세를 캐나다로 망명한 소종파를 재정적으로 지원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한다. 그 후에도 많은 집필활동을 했으며, 1910년(82세) 10월 28일 의사 마코비스키와 가출, 10월 26~29일 최후의 저작인 『유효한 수단』을 탈고하고 10월 31일 여행 도중 병이 위중해져 한 시골역 사스타포보에서 차를 내려 11월 7일 오전 6시 5분 역장 집에서 사망 11월 9일 그의 고향인 야스나야 빨랴나에 묻혔다.
2. 톨스토이의 교육사상
가. 교육관
톨스토이의 교육개혁 노력은 러시아에 그 스스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루소에 닿아 있으며, 19-20세기 유럽 전역의 개혁교육운동의 하나의 맥락이라고도 볼 수 있다. 톨스토이는 귀족의 신분으로 농민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새로운 작업 방식을 개발하고 노예를 해방하였다. 민중을 위한 그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어린이의 삶과 자유를 존중하는 초등학교 수준의 개혁적인 학교를 설립하고 교육전문지를 발간하였다.
톨스토이는 교육은 소위 궁극적인 목적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다고 말한다. 교육 목적이란 교육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며, 굳이 개념적으로 표현하면 ‘이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목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인생관은 한마디로 ‘낭만적’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 혹은 정신을 매우 중시한다.
교육은 “자연과 인생을 안내하는 것이지, 일정한 자연관이나 인생관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며, 학생의 원래 순수했던 영혼을 유지하고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지식과 윤리를 일상생활을 통해서 배우도록”했던 것이 톨스토이 교육철학의 핵심이다.
나. 교사관
톨스토이가 생각하는 교사는 단순히 지식 전달자가 아닌,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이어야 한다.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교사가 말하는 것을 묵묵히 듣고 있는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끊임없이 자기 말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말하는 것을 듣고, 필요한 경우에 그 내용 중에서 수정할 부분을 고쳐주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교사는 소재에 따라 가르치는 방법을 정함과 동시에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와 학습방식과 특히 이를 끌어내는 데 학생들이 바라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톨스토이는 교사들이 단순하게 전통적으로 가치 있다고 해서 그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거나, 당대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전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교사는 문화의 지배적인 특성들을 정화시키고 단순화시키는 필터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교과안에서 지식과 탐구의 방식을 이용하여 교사로서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문화의 측면들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극한다. 교사는 보통 이상의 독립성을 부여받게 된다. 그 자신의 판단이 긍극적이고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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