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출생 : 1828년 9월 9일 ~ 1910년 11월 20일
러시아의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이다.
톨스토이는 1828년 9월 9일 부유한 지주귀족의 아들로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그가 9살 때 부모를 잃고, 친척들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으며, 프랑스, 독일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16살 때 카잔대학에 입학하여, 처음엔 어학을,
다음엔 법학을 공부하다가 1847년 중퇴하였다.
1851년 그는 카프카스로 가서 입대를 했다.
카자흐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쓴 단편소설 (1863)은 약아빠진 모스크바 젊은이의 나약함과 정력적인 자연 그대로의 카자흐 사람들의 삶을 비교하고, 동정과 깊은 시적인 사실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그는 자서전 (1852), 이어서 (1854)와 (1856)를 완성하였다.
이 작품들은 그의 크림전쟁 참가에 바탕을 둔
(1855-56) 처럼 즉각 갈채를 받았다.
1856년 톨스토이가 페테르부르크에 돌아와 농민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졌다. 1857-1861년 동안 프랑스, 독일 국민학교를 방문하고 난 후, 야스나야 폴랴나에 동네 학교를 세웠다.
1862년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결혼했으며, 15년 후 가족이 커져 그의 영지를 잘 경영할 수 있었고, 두 개의 유명한 작품 (1865-69)와 (1875-77>을 썼다. 그 외에 그의 작품은 (1882), (1886), (1888),
(1899) 등이 있다.
82살 되던 해 그는 그의 가르침과 그의 개인적 부유함의 부등으로 괴로워하던 중, 그의 아내와 말다툼 한 후 집을 나왔다.
3일 후, 1910년 11월 20일 빈촌의 정거장에서 폐렴으로 죽었다.
부활과 톨스토이
톨스토이 말년의 대작 은 일종의 반성문이다. 1828년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톨스토이는 어렸을 때 푸시킨의 시를 아버지 앞에서 암송해 칭찬받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아이였다. 세 살 때 어머니가, 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모 밑에서 자라면서도 공부를 잘해 1844년 16세 때 카잔대학에 합격했다. 하지만 마음에 안 차 페테르부르크대학 법학사 자격 검정시험을 치러 두 과목에 합격했다. 그러다 이마저도 조금 다니다 중도에 포기하고 귀향했다. 그는 대학 시절 학업은 뒷전이고 사교계에 출입하면서 도박과 주색에 빠져 지냈다. 톨스토이는 임종 얼마 전에 자신의 전기 작가 비류코프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안 한 얘기일세. 이 얘기를 내 전기에 넣어주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두 가지 큰 죄를 지었네. 결혼 전에 아크시니야 등 몇몇 소작인 여자와 관계를 가졌네. 또 하나는 숙모님 댁에서 일하던 가샤라는 하인을 건드린 죄일세. 그녀는 순결한 처녀였는데 내가 유혹했기 때문에 숙모님 댁에서 쫓겨나 신세를 영 망치고 말았네.”
그는 젊은 한때 임질에 걸려 고생했을 정도로 황폐한 삶을 살다 이러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고 1850년 6월 11일부터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지난날을 반성했다. 군 입대도 스스로 정신을 차리려는 반성의 일환이었다. 포병대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해 복무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 러시아 문단에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다.
부활과 톨스토이
장교로 제대하고 나서 더욱 열심히 소설을 쓰던 중 A.F. 코니라는 이름의 변호사 작가한테서 핀란드 어느 별장지기의 딸 로자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에게 농락당해 임신한 뒤 주인집에서 쫓겨나 매춘부로 전락했다는 실화였다. 페테르부르크 센나야 광장 근처의 매음굴에 살던 그녀는 술 취한 손님의 돈 100루블을 훔친 죄로 4개월 금고형을 받는다. 그런데 그 재판 배심원 중 로자리아에게 못된 짓을 한 남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남자는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교도소로 찾아가 청혼을 했다고 한다. 당시 이 재판의 검사였던 코니를 찾아와 상의를 한 그 남자는 코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가서 구애해 여자로부터 마침내 결혼 승낙을 받아냈다. 금식기간만 끝나면 식을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던 터에 신부 될 이가 발진티푸스로 죽고 만다. 남자의 그 뒤 소식은 코니도 모른다고 했다.
톨스토이는 코니한테서 이 일을 소설로 쓰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고 1889년부터 라는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1899년 가을에 탈고했으니 꼬박 10년에 걸쳐 쓴 소설이 이다. 남자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분신이고, 여자 주인공 카추샤(소설 속 본명은 예카테리나 미하일로바 마슬로바)는 가샤와 로자리아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부활 작품분석 및 줄거리
톨스토이의 부활은 예술적 성서라고까지 칭송된다.
그러나 부활은 19세기 제정러시아의 모든 면을 고스란히 작품 속에 투영시킨
사실주의의 걸작이다.
네흘류도프는 순수한 청년이었다. 그런데 그를 타락시킨 것은 군대였다. 귀족이었던 그는 많은 재산을 상속받게 되어 있었고 귀족자제로써 당연히 거쳐야 할 군대를 가게 된 것이다. 당시 러시아의 사회상은 무너져가는 왕권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유럽 여기 저기서 근대화가 이루어져 서로 협력과 반목을 번갈아 하던 시대이다. 왕권이 부실하니 귀족들도 정체성을 잃고 혼란해 할 시기다. 네흘류도프는 이렇게 군대를 가기 전까진 순결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도 남들처럼 출세의 길을 가야했고, 그의 고모 댁에 양녀 겸 하인으로 있던
카츄샤를 만나게 된 것은 그가 군대를 가기 얼마 전의 일이다. 카츄샤는 네흘류도프의 고모 댁
하녀가 낳은 사생아다. 이를 불쌍히 여긴 네흘류도프의 고모 소피아가 그녀의 대모가 되어 준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 네흘류도프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카츄샤를 범하고 만다. 그리고 홀연히 군대로 떠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망각 속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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