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학교 창시자 이찬갑
이찬갑은 평생을 우국지사(憂國之士)로 살았는데, 자기 자신보다는 민족을 늘 걱정했고, 특히 농민과 농촌의 앞날을 늘 염려하였다. 해서 자기 자신이나 가족의 생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고 한다.
2. 배경과 사상
(1) 당시 사회적 배경 “민족적 고난과 혼란의 시기”
35년간의 일제 식민통치, 뒤이은 해방과 동족상쟁의 비극, 남북분단의 고착화, 잇따른 독재정치 등의 혼란하고 어지러웠다.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인고의 세월로 민족적 고난의 시기를 살아야만 되었기 때문인지, 이찬갑은 자나 깨나 한국 민족이 밝고 맑은 광명의 새 세상에서 잘 살게 되기를 염원하였다. 혼란하였던 민족적 고난의 시기에도 흔들리거나, 세상에 섞이거나,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부러질망정 휘지 않았다. 너무나 강직해 괴짜, 편벽한 사람이란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함께 풀무학교를 세웠던 주옥로는 이찬갑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진실 자체이신 분”이라고 평가하였다.
(2) 사상적 배경 “기독교 사상”
그는 기독교 신자로써 일평생 성서대로 살려고 노력하였으며, 예수를 본받으려 애썼다. 개교식에 발표한 학교 설립 취지문을 보면 “그리스도인, 농촌의 수호자, 세계의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지역과 국가의 백년대계인 학교를 세운다”고 적혀있다. 풀무학교에서 ‘위대한 평민 ‘위대한 평민’은 풀무학교 정원에 서있는 돌에도 새겨져 있으며, 오랫동안 풀무의 교훈으로 애용되어 온 말이다. 현재 풀무학교의 교훈은 ‘더불어 사는 평민’ 이다.
’을 기르고자 했다. 농촌지향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것만 같아 보이는 그가 "세계시민"의 양성을 목표로 정한 것은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일의 처음과 끝이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는 매일 새벽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뒷동산에서 올라가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며 기도와 묵상으로 하루를 열었다고 한다. 이찬갑이 풀무학교를 통해 기르고자 했던 ‘평민’은 바로 예수였다. 2천년 전 유대 땅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왕, 귀족, 부자의 아들이 아니었다. 가난한 시골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이 세상을 구원하였다.
기독교정신은 그의 학교에 깊게 스며들어있다.
해방된 어느날 평안북도 정주군 인민위원회에서 인민위원을 선출하는 군민대회에서 성서를 들고 등단하여 민수기에 나와 있는 가나안땅 분배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성서의 진리야말로 영원하고 성서의 정신에 근거하지 않으면 무익합니다.”
3. 핵심적인 교육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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