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혁명과 더불어 자본주의 경제가 점차 발전해 가던 영국에서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조화시키는 일이 문제가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등장한 것이 바로 공리주의이다. 즉 산업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삶이 너무나 열악한 것을 보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가 얻는 수입은 일정하다. 그렇다면 이 수입을 어떻게 사용해야 더욱 행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배고픈 사람은 밥을 먼저 사먹을 테고, 배부른 사람은 유희를 찾을 것이고, 피곤한 사람은 잠부터 청할 것이다.
처음에 했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당신이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의 필요를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채워줄 것인가? 빵을 만드는데 더 많이 배정해야 할까, 오락거리를 많이 만드는데 배정해야 할까? 아니면 집을 짓는데 우선 배정해야 할까? 여기서 공리주의는 더 많은 수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자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공리주의의 대표적인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개념이다.
공리주의에서 인간은 즐거운 것과 즐겁지 않은, 즉 불쾌한 것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다. 또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인간은 이성적 능력을 발휘해 타인의 처리를 고려하는 공평한 관찰자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행위나 다수의 행위의 결과를 공정하게 관찰한다. 그 결과가 바람직하다면 행위의 정당성이 인정이 되며 그 결과가 다수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면 행위의 정당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결과의 바람직한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이러한 공리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는 벤담과 밀이 있다.
벤담은 양적 공리주의를 주장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쾌락과 고통은 가장 기본적인 개념임을 전제하고 다른 개념들은 결국 쾌락과 고통의 수치로 환산하여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쾌락을 증진시키고 고통을 회피하도록 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으며 이성의 명령에 따라 공리주의적인 원리를 따른다고 말한다.
벤담은 쾌락과 고통의 기준을 유용성의 원리로 설명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의 결과를 탐구함으로써 그 행위의 이로운 결과와 해로운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게 된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쾌락과 고통은 경험적으로 산출되며 이러한 결과물로 유용성을 따지게 된다. 따라서 벤담은 철저하게 경험적이고 결과주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즉, 유용성의 원리가 의미하는 바는 그것이 어떤 행위든지 간에, 그 행위가 그것과 자신의 이익이 관련되는 사람들의 행복을 증가시키는 경향성을 지니는가 혹은 감소시키는가에 따라서 그 행위를 시인하거나 부인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행위가 행복을 증진시키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그 행위가 판단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용성이 과연 계산 가능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 벤담은 쾌락은 측량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벤담이 양적 공리주의자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쾌락을 측정하는 측면에는 7가지가 있는데 강도와 지속성, 확실성과 근접성, 생산성과 순수성, 범위가 그 것이다.
밀은 벤담의 후계자이다. 밀은 벤담처럼 삶을 궁극적 목표를 행복으로 보면서도, 쾌락의 양만을 중시할 것이 아니라 그 질적인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질적 공리주의라고 한다. 밀의 공리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는 벤담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쾌락을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간주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천박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쾌락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 반박한다. 즉 상위의 쾌락과 하위의 쾌락이 존재하는데 인간은 상위의 쾌락을 추구할 수 있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감각적 쾌락보다는 정신적 쾌락이 더 수준 높은 쾌락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쾌락을 추구할 것이라고 밀은 생각한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에 찬 소크라테스가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만에 찬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쾌락을 다른 쾌락보다 질적으로 우월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밀은 높은 질의 쾌락들이 인간이 상위의 능력들을 발휘하는 것과 연결된다는 점을 주장한다. 인간이 상위의 것들을 욕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능력들을 발휘하고 이로부터 생겨나는 쾌락들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은 더욱 고상한 것들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 능력은 유혹이나 성격상의 결함에 의해서 손상될 수도 있으며, 인내심의 부족으로 강건함이나 용기, 또는 기회의 부족으로 무디어질 수 있다. 하지만 밀은 인간이 상위의 쾌락을 추구할 수 있는 상위의 능력이 있는데 굳이 하위의 쾌락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있다. 밀이 보기에는 인간의 행복을 정의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상위의 능력들을 발휘하는 것과 이로부터 얻는 기쁨이다. 우리가 인간의 행위를 평가하는 기준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복합적인 목적이며 이 목적을 증진시키는 행위는 옳은 것으로, 이를 훼손시키는 행위는 그른 것으로 평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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