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저 희곡선 독후감
오작녀는 지주라는 기존질서의 지배세력과 접촉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오작녀의 아버지가 박훈의 집에서 나오라고 했을 때도 아버지에게 저항하며 그 집에서 계속 머물러 있으려 했으며, 더 이상 지주계급이라고 할 수 없는 박훈에게 이전과 같은 순종적인 태도를 보인다. 보통 마을 사람들과는 다르게 어떠한 이익을 탐하려 하지 않는다. 박훈을 예전과 같이 받드는 것이 오작녀에게는 일종의 소명의식과 같이 여겨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오작녀는 여자의 미덕인 순종과 기존질서를 지향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다. 전쟁이 막 끝난 직후에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이전의 믿음과 가치신념을 고수하는 오작녀는 소설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가치내릴 수 있는 인물일 것이다.
오작녀가 가지고 있는 믿음과 가치신념은 바로 사랑과 대응된다. 오작녀가 갖고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사랑이다. 오작녀는 박훈의 상처를 직접 치료해주고 박훈이 늦게 들어오는 밤이면 마중하러 나오고, 밥 때를 꼭 지켜 상을 차려 올리고 그의 집안일을 자기가 돌본다. 박훈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작녀는 박훈에게 헌신적인 것이다. ‘큰애기바윗골 전설’은 소설 전반부에서부터 박훈과 오작녀의 애정관계를 암시하는 역할과 작품을 서정적이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정적이면서도 전설의 비극적인 결말 때문에 비운의 여주인공을 생각하게 한다. 뻐꾸기가 울 때마다 큰애기바윗골의 전설을 떠올리며 큰애기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킨다. 큰애기와 마찬가지로 신분적 차이 때문에 사랑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이 자신의 상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작녀는 사랑을 확인받고 결실을 이루기를 원하지 않으며 그저 옆에서 있을 수 있다는 자체에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오작녀 자신은 바위가 된 큰애기보다도 훨씬 행복하다고 여러번 생각한다. 보상과 요구가 없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오작녀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오작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헌신적인 희생을 하는 인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강인한 여성이기도 하다. 오작녀는 한 번 결혼을 했던 유부녀로서 박훈과 같은 집에 몇 년간 살고 있는 것을 들어 동네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받았었다. 그렇지만 오작녀는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끝까지 함께하려고 한다. 박훈이 지주숙청을 당하게 될 위기에 처했을 때 일의 당사자인 박훈은 모든 일을 끝내고 싶은 듯 체념적인 자세를 취했으나 오히려 오작녀는 집을 내줄 수 없다고 필사적으로 막았고 박훈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박훈과 자신은 결혼을 한 사이라는 거짓말을 한다. 남편이 있는 유부녀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든다는 것은 봉건적 공동체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부도덕적인 행위이다. 공동체 내에서 용인되기 어려운 부덕을 저지른 인물이 돼서라도 지키겠다는 오작녀의 강렬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오작녀의 외면에서도 그 강인한 인상이 드러난다. 온순한 성격을 가졌지만 오작녀의 그 눈은 타고 있는 듯하다라고 묘사가 된다. 이러한 외양을 소설에서는 자주 언급하고 있다. 먼저 발견한 것은 산언덕에서 불장난을 했던 어릴 적의 일에서다. 마른 잔디가 풀풀 타는 양이 여간 재밌는 게 아니고 불이 웬만큼 퍼진 다음에 그것을 끄는 맛이 또 좋기도 한 이유에서 장난으로 붙인 불이 아무리 끄려고 해도 꺼지지 않았다. 그 때에 오작녀가 달려 나와서는 그대로 불 위를 뒹굴어 자기 몸으로 그 불을 다 끄고야 말았다. 그때부터 오작녀의 눈에는 그 불이 옮겨 붙은 것처럼 타는 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박훈은 오작녀의 그 타는 듯한 눈에 매료되어서 그 이후로도 오작녀에 대한 모종의 감정이 생기게 된 것이다. 오작녀가 박훈의 시중을 드는 지금도 박훈은 오작녀의 그 눈매에서 위안과 안도를 느끼고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갖는다.
『카인의 후예』는 전후 북한의 토지개혁과 인민군이 세력을 잡던 혼란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기에 쓰여진 작품으로 손창섭의 『생활적』이란 작품 또한 기존의 공동체적 질서와 윤리가 점점 힘을 잃어가던 사회적 혼란기의 시대적 배경이 그대로 작품 안에 반영되어 손창섭의 전반적인 작품의 분위기가 그러하듯이 작품은 음산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평범하거나 정상적인 관계양상을 보이지 않고 비정상 혹은 기형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시대도, 인물도 모두 비정상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이 소설 속에는 일본인 여성인 ‘춘자’가 등장하는데, 이 인물은 윤리와 도덕같은 것은 이미 삶과 바꿔버린지 오래인 여성이다. 원래 춘자는 해방기에 한국인 남자와 결혼해 한국으로 왔는데, 그만 고향에서 남편이 여수 춘천 반란 사건으로 인해 학살당하게 되어 버린 후, 일본으로 가려고 부산으로 내려왔지만 친정과 연락이 닿지 않아 호적등본을 갖고 있지 않은 관계로 일본에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돼 버린다. 그 이후에 여자 혼자의 몸으로 목숨을 이어오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춘자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우연히 만난 동주라는 인물과 부부와 같은 생활을 한다. 그렇지만 돈에 대한 욕망이 강해서 누구든지 지금의 현실을 좀더 윤택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금방 따라가고 마는 인물이다. 옆 집에 사는 봉수가 자신과 함께 국수집을 하자고 하자 마치 ‘마치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처럼 동수를 떠나가게 된다. 이처럼 춘자는 자신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인물에게는 언제라도 등을 돌릴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며 속물적인 자세로 삶을 살아간다. 춘자에게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은 없다. 춘자를 좀 더 편하게 안정적이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사람이 춘자의 사랑이 되는 것이다. 삶과 타협하여 사느라 춘자에게는 이미 사랑이라는 가치는 잊혀진지 오래이다. 이런 인물이 만들어지는 것의 원인은 혼란스럽고 윤리의식이 무너진 사회상에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카인의 후예』에 등장하는 오작녀는 변하는 사회상에 상관없이 자신의 유년시절부터 지켜왔던 사랑과 지조를 끊임없이 고수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카인의 후예』의 등장인물 오작녀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오작녀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순종과 헌신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본 소설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과 비교해도 강인한 인성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 주인공 박훈이 세계와의 갈등을 이겨낼 수 있게 한 희망적인 인물로서 오작녀란 인물을 중요하게 가치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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