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감상문
단정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어떤 단어나 문장으로 아니 우리의 생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무언가를 던져 주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나에게 와 닿았던 것은 우울함을 더 하는 천사의 흑백화면과 인간의 칼라화면.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독백 ....한편의 영화라기 보다는 철학책 한권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기 먹어 잔뜩 흐린 베를린의 낮은 하늘은 아침마다 고층 건물에 찔려가며 땅으로 주섬주섬 내려오는 느낌 이었고, 온도는 그리 낮지 않지만, 그곳에 있으면 철학자 아니면 우울증 환자만 만들 것 같은 숨을 막는 습기. 도대체 다미엘은 이런 도시 어디에, 무엇에 반한 걸까? 은빛 찬란한 승리의 여신상이 내려보는 베를린, 그 여신상 어깨에 앉아 있는 다미엘의 시선은 무엇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일까?
이 영화를 본 후 “이것이다!”. ‘영화로 읽는 철학’의 리포트를 고민하던 나에게는 목마른 사슴이 푸른 호수를 발견한 것 같은 시원함을 주었다. 하지만 막상 손을 대기 시작하니 하루에 한두줄 쓰다가 포기하고, 생각만 하다가 포기하고 무언가 쓸 내용은 많은 것 같은데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할뿐 표현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만큼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는 강렬한 것일까?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나는 나고 네가 아닐까?.....왜 난 여기 있고 저기엔 없을까?.....지금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이 단지 환상이 아닐까?......나라는 존재가 내가 되기 전에는 대체 무엇이었을까?......언젠가는 나란 존재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가 아이였을 때부터 역사는 시작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말...”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존재 아이. 혹은 아기.. 나에게도 이런 아이라는 시간이 있었을까? 물론 당연히 있었지만 그것을 잊은 채 살아가는 내가 아니 이 세상 우리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예전의 순수함으로, 현실이라는 세상이라는 억압의 존재에, 구속의 대상에 찌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아가며 자기 현실이라는 틀에 자신을 꽤어 맞추고 남들도 그 틀과 자신만의 시선으로 처다보고 인상 찌푸리는 그런 어른이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깨끗한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가 될 수 있을까? 이 한편의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우울함만 더해 갔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내 안에 잠들고 있는 예전의 아이를 느낄 수 있어서 그 우울함은 살짝 미소짓는 씁쓸한 우울함이 아닐까 한다.
이 영화에서 또한 많이 차지하는 것이 바로 독백이다. 거의 인물과 인물간의 대화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독백으로 ,그리고 옆에서 그 독백을 가만히 듣고 있는 2명의 천사의 시선으로 이 영화는 만들어 졌다. 독백은 무엇일까? 그저 남에게 표현하거나 이해시키는 것이 아닌 , 자신만의 생각으로 자신의 언어를 사용해 자신의 머릿속에서 내 뱉고 그 것을 공감하며 안도해 가는 것인가? 그 것은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 아닐까? 천사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면 그들은 언어의 읽기.쓰기,말하기 같은 것이 필요 없으며 독백, 생각, 마음, 이라는 자신의 영역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영화에서도 그들은 서로 사람들이 독백한 것을 적고 같이 그 내용을 이야기하며 지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인간은 독백이라는 언어가 있어서 절망하고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의 독백은 거의 절망과 좌절 그리고 어두움 뿐이다. 아마도 천사가 흑백만 볼수있고 화면에서도 천사가 등장하면 항상 흑백으로 처리한 것은 그들이 인간에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삶에 찌든 소리, 현실에 아파하는 소리만 듣고, 그들이 비록 천사이긴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못하고 그저 옆에서서 같이 아파하고, 눈물흘리고 , 슬퍼하는 것 , 이것이 그들의 능력의 전부이기에 다미엘은 나중에 흰색 아니면 흑 이라는 천사의 시선보다는 다채로운 색(色)이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인간을 동경한 것이 아닐까!
이처럼 천사 다미엘은 비록 천사라는 감투(?)를 쓰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그 천사라는 존재가 인간을 동경하는 존재, 미약한 존재이고 우리 인간이 천사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니 태초부터 살아온 그가 인간이라는 존재가 태어난 겨우 2000년이라는 세월에 두꺼운 갑옷을 팔고 인간이 되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원 속에 떠다니느니 현재를 느끼고 싶어. 끙끙 앓기도 했으면. 천사가 불멸을 포기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되길 원하는 얘기에 담긴 건 이처럼 육체 찬가이다. 그저 유한한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 만을 충족시키는 보통명사로서의 몸을 찬양하는. 다미엘이 하늘에서 떨어져 인간이 된 뒤 처음 거닌 곳은 포츠담 광장을 가로지르며 베를린 동서를 나누던 장벽 근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머리에서 나오는 피를 보고 맛을 음미하고, 피와 베를린 장벽의 여러 가지 색을 물어보며 기뻐하며 커피를 마시는 그의 모습에 그동안 잊고 살은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은 전율이 나의 몸을 타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또한 베를린 사람들의 건조하고 암울한 독백을 듣는 천사의 흑백 영상에서 인간이 되어 칼라로 변화는 순간 그동안 우리가 느끼지 못했던 육체의 황홀한 의미를 느낀 것 같은 착각이 느껴졌다...
인간이 된 다미엘.. 그는 그가 인간을 동경하고 , 인간이 되기위한 결정을 하기위한 결정적 요인을 한 서커스에서 그내타는 여인(지금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을 찾아가 사랑을 하며 이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인간에게 항상 연민을 느끼고 안타까운 시선만 보내던 천사.. 그러다 한 여인의 독백을 듣게 되고 그 여인에 대한 천사로서의 연민이 사랑으로 바뀌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영원한 시간 속에서 허덕이는 천사가 아니라 ‘영원’이 아닌 ‘지금’ 이라는 순간을 알 수 있는 인간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특히 영원이라는 단어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가지던 그는 영화 마지막장면에서 그의 깨달음을 이야기하였다.
《 서커스 연습을 하는 마리온과 연결된 밧줄을 다미엘이 잡아주는 장면이었다. 그때 다미엘은 이런 말을 남겼다. 어젯밤 나는 느꼈다. 단 한번이었지만 영원이었다. 둘이라고 하는 놀라움이 날 진정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난 이제 안다. 어떤 천사도 모르는 사실을. 》 드디어 그는 영원의 참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천사로서의 영원이 아닌 유한한 육체의 인간으로서 영원을....
이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졌던 나의 식성을 단숨에 바꿔버린 영화이다. 아니 한편의 철학이 담긴 그림이라고 할까? 그리고 나도 나에게 좀더 가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미엘을 구속했던 은색 갑옷이 나를 보호하기 전에.. 또 언젠가 나도 다른 이의 아픔과 슬픔을 감싸주며 영원을 서로 공유하는 천사가 될지 때문에 ...
끝으로 이 영화의 엔딩에 나오는 문구“ ‘모든 전직 천사들에게 바침To be continued...”처럼
나는 모든 인간들에게 이 영화를 바치고 싶다..To be continued...”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