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독후감
고종의 아버지로 마지막개혁을 단행한 흥선대원군 안동가의 세도정치가 기세를 부리고 있을 때 그들에게 굴복 하듯 생활하고 심지어 미친사람이라고도 취급 받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고종의즉위로 집권하여 벼락같은 개혁 조치를 취해 정국을 일시에 바꿔놓았다.
민비는 궁중에 들어온 직후부터 궁내에서 대단한 칭송을 받았지만 정작 고종에게는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대원군과 민비 사이가 벌어진 직접적인 원인은 궁녀 이씨에게서 태어난 완화군을 대원군이 편애하여 세자로 책립하려 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구나 1871년 민비는 자신이 낳은 왕자를 닷새만에 잃었는데, 이때 왕자가 대변이 나오지 않자 대원군이 보낸 산삼을 먹이고 그 이틀뒤에 죽게 되었다. 이 때문에 원한이 사무친 민비가 대원군을 축출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보다는 민비를 중심으로 한 노론 세력과 대원군때 등용된 남인과 북인을 중심으로 한 세력간의 정치적 갈등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대원군과 사이가 악화된 이후 민비는 그를 정계에서 밀어내려 하였고 이를 배후에서 지원하는 정치세력이 있었다. 대원군의 정적인 안동김씨의 노론세력과 대원군의 권력독점을 우려한 조대비 세력, 그리고 대원군에게 무시당하던 대원군 문중 내부의 세력이 그들이다. 마침내 1873년 유림의 최익현이 대원군 탄핵 상소를 올리는 것을 계기로 대원군은 다음해에 실각하고 만다.
대원군이 실각한 후 민비는 민씨 친족을 앞세워 정권을 장악하고 고종을 움직여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는 등 일련의 개화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민비는 개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위협을 받는다.
1882년 민비 세력의 개화정책에 불만을 품은 위정척사파와 대원군 세력이 군량미 문제로 임오군란을 일으켜 그녀를 죽이려 하였으나, 민비는 이용익의 도움으로 궁을 탈출해 충주목사 민응식의 집에 피신하였다. 그리고 비밀리에 고종과 접촉해 청나라에 군사지원을 요청하였다. 민비의 요청으로 출동한 청국군은 대원군을 납치하여 청나라로 끌고갔다.
임오군란 이후 민비는 친청 정책을 실시하였는데, 이것이 개화파의 불만을 사게됐다. 김옥균·박영효 등은 1884년 정치개혁과 청나라에 붙잡힌 대원군의 석방을 요구하며 갑신정변을 일으켜 일시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이때도 민비는 청국군의 도움으로 당시 정권을 되찾았다.
한 시대를 주도했던 두 인물. 그들을 비록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지만 이들이 있어 우리나라가 이렇게 좀 더 강건하고 굳건하게 성장해서 세계의 중요한일부분이 된듯하다.
비록 우리나라 역사의 전체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이번을 계기로 조금 더 역사에 대해 하나라도 알아갔다는게 나의 지식과 우리민족의 자긍심을 알게 된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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