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굴뚝청소부를 읽고 생각해보는 청소 이야기
친구 녀석은 같은 또래의 친한 친구들과 아파트를 하나 얻어서 살고 있다. 한 공간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20년을 넘게 살아온 4명의 사람이 모였으니 사소한 습관 하나에서도 부딪칠 수밖에.
친구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청소문제였다. 방 한 칸을 두 명이서 사용하는데 친구 녀석과 같은 방을 사용하는 친구가 방이 아무리 더러워져도 청소를 안 한다는 거였다. 그러니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친구 녀석이 매일 청소를 할 수밖에. 처음에는 한번만 내가 해주지하는 심정으로 했는데 한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하니 녀석도 한계에 도달, 친구에게 은근슬쩍 청소 좀 하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대답만 잘하고 행동의 변화가 없는 것이다. 청소문제로 화를 내는 것도 좀 쫀쫀한 것 같고 그래서 며칠을 속상해한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아직도 그러니? 그냥 강하게 밀고나가. 같이 살면서 그렇게 행동하면 되겠냐고? 돌아가면서 청소하기로 했으면 지켜야하지 않느냐고.”
그런데 의외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친구 녀석의 얼굴에 짜증이 섞이기 보다는 평온한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니야 그냥 속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어”하는 것이다. 내용인즉 자신과 그 친구의 ‘더럽다’는 것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기가 아무리 더럽다고 생각해도 그 친구에게는 아직 깨끗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친구는 당연히 청소를 안 할 수밖에. 그렇게 생각했더니 속이 편하다는 것이다.
‘아!’ 간단한 친구 녀석의 결론이 어찌나 마음속에 와 닿는지 속으로 감탄에 감탄을 연발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아주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원만한 관계를 무리 없이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구나.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서양 철학자들이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를 어떻게 금 긋고 있는지와 그 경계를 어떤 사유를 통해서 뛰어 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즉 근대철학에서는 ‘주체’라는 범주가 선험적인 출발점이었는데 탈근대적 문제설정은 이와 반대로 주체가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한 결과물로 간주된다는 것, 그리고 근대철학에 있어서 지식이란 인간의 인식이 도달해야할 목표 지점이었기 때문에 참된 지식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다루어 졌지만, 탈근대적 문제설정에서는 지식이 주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담론으로 정의되며, 그것이 참이든 거짓이든 그 효과가 무엇인지를 통해서 인정된다는 것, 그러면서 경계를 넘어서는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에 ‘필요한’ 주체로 되어 가는지에 대한 연구인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그에 대한 나름의 대답으로서 나는 ‘사고의 전환’을 말하고 싶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얼마나 큰 결과의 차이를 가지고 오는가.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이끄는 행동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역시 얼마나 크게 달라질 수 있는가. 또한 그런 사고의 전환을 노장사상에서 발견하게 된다. 무엇이든지 논증하려고 드는 서양사상가들과는 달리 이들은 정신의 자유로움 속에서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을 몰고나가 결국은 그 생각의 끝에서 사고의 전환을 이루는 것이 아닌지. 그래서 이들은 항상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살면서도 또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어떻게 보면 너무나 간단한 친구 녀석의 말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유용한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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