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독후감 보고서
스승이란 것은 지식의 전달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만 알았던 나에게 이 글은 충격이었다. 스승은 지식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 또한 남에게 모범을 보이면 그것이 스승이라는 것을 알게 된 기회였다. 1000년도 더 된 이 책이 무슨 소용 있겠냐는 생각을 했지만 ‘책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말임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하였다.
은 참된 스승의 존재를 밝히면서 배우는 사람의 도리 또한 밝히고 있다. 처음 『스승은 ‘도’를 가르치고 ‘업’을 주고, ‘의혹’을 풀어 준다 하였다.』 여기서 ‘도’는 ‘옳고 그름’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미 지식의 전달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져 왔음에 놀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두 번째가 ‘기술’, ’지식’ 이고 , 세 번째가 말 그대로 ‘궁금’한 것을 풀어 주는 것이라 했다. 요즈음의 교육 현실을 보면 뼈저리게 느끼는 가슴 아픈 항목이 아닐 수가 없었다. 몇 년 전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적이 있는데, 중학교 1학년 짜리 한 녀석이 바닥에 떨어진 종이 조각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걸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내 가 옆에서 청소를 하는데, 그래서 그 애를 혼내 줬는데, 부모에게 항의 전화가 왔던 것이다. ‘애한테 공부만 가르치면 될 일이지, 그런 걸로 왜 혼내냐?’는 말이었다. ‘가정에서 배워야 할 것을 못 배우고 사회에 나왔으니 이를 가르쳐 준 것 뿐’이라 말 했다.’ 스승은 무엇이며, 부모는 무엇인가? 스승이 지식을 가르쳐준다면 부모는 무엇을 가르쳐 줄 것인가 배운 것 이라곤 자신의 이름과 저속한 말 몇 마디 뿐이지 않은가?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가슴에 와 닿아 감탄이 나오는 문장이 있었다. 『부모가 자식은 사랑하여 스승을 선택해 가르치면서 자신은 배우기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아이들의 스승이란 그저 글이나 가르쳐 주고, 구두나 예습 시키는 것이니, 내가 말하는 전도 , 해혹 하는 스승은 아니다.』 이것은 배우는 사람이 ‘진정한 배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데서 발생하는 거라 하겠다. 내가 어릴 적 나의 조부모는 나를 공부 시키기 위해 당신께서 먼저 공부를 하셨다. 일흔이 다되어 가실 때에도 교육방송을 보고 영어를 공부하셨으며, 유교 경전을 읽으셨으며,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사람 노릇’을 하라 고 가르치셨다. 손자를 가르치기 위해 당신들이 먼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 후 나의 의혹을 풀어주었지, 거짓으로 지어서 답 해주었지 모른다고 외면하는 일은 한번도 없었음을 보고 배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던 경험이었다.
또한 당신들께서 모르시면 나에게 직접 알려 달라 하시고 웃으시면서 ‘배운걸 누군가에게 가르쳐봐야 더 잘 안다고 말씀하시던 것이 기억 난다. 이미 겪었던 일들을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한 체 살아 오다가 이 글을 읽게 되면서 내 자신이 교육을 잘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스승은 지식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의 고하에 의해 결정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데서 1000여 년이 지난 지금에게 교훈이 되었다. 제자가 반드시 스승보다도 못한 것이 아니며, 스승보다 현명한 제자가 있을 수 있고, 단지 ‘도리’, ‘지식’, ‘기술’ 을 먼저 배웠을 뿐이라 하였으니. 스승이란 권위적인 인상을 버리고 벽을 낮추며, ‘스승은 ~에 불과 하다’라는 표현을 쓴 것이 참 인상 적이었다. 나이가 어려도 자신보다 경험이 많으면 응당 배워야 하는 법임을 강조 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가슴 아파하고 있다. 실제로 요즈음에는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하는데, 좋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남에게 조언을 하면 지금 나를 가르치냐?’는 말 한마디가 나오는 세상이며, 서로가 잘났다고 떠드는 세상에서 만난 이 한 편의 고문이 우리의 교육의 이정표가 되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본다. ‘족집게 과외’도 ‘학원도’ 우리가 교육을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반영해 주는 듯하다. 교육을 받아 머릿속에 남았으나 가슴속에 없고, 행동 없는 교육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한번씩 꼭 읽어 보기를 바라는 글이며, 강의 시간에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게끔 하는 문장이었다.
도를 전함
의문을 풀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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