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전기문 글짓기
엄마의 아버지는 김수동이신데, 첫 아들 이후 어머니(서춘녀)께서 세 번 연속 딸만 낳아서 네 번째 딸이 태어날 때 까지 이름도 안지어 주셨답니다.
이름의 유래나 뜻은, 솔직히 아무 뜻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번쨰 딸이어서 아버님이 출생신고를 안 하시고 3년 후, 여동생 출생 때 동생과 함께 동네 이장님꼐서 본인의 임의대로 즉흥적으로 지어 올린 이름이 바로 “ 김영순”이다.
어려서는 60-70년 대 시적이라서 어린 시절에는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고, 밥 먹으면 땅 따먹기, 공기 놀이, 여름에는 강가에 나가 멱을 감고, 겨울이면 고무줄 놀이나, 눈싸움, 깡통 차기 등등을 했습니다.
박정희가 7대 대통령이 될 당시에… 어느 덧, 8살이 되어서 가곡 국민학교 향산 분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분교인 만큼 공부보다는 아주 즐겁게 뛰어 놀던 생각, 특히 운동회나 소풍 가는 날을 반겼답니다. 분교 생활 2년 째, 단국대학교 학생들이 봉사활동으로 일손도 돕고, 공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때 대학생을 꿈꾸는 환상을 꿈꾸며, 열심히 공부 해야 겠다고 다짐했답니다. 시골 학교에서 서울의 젊은 사람의 멋진 모습에 반했었다고 합니다.
엄마가 아버지와 잊지 못할 追億을 갖게한 것이 초등학생 시절에 있다고 합니다. 예천에 계시는 고모님의 생신 때 아버지와 함께 단 둘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함께 기차도 타보고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요즘은 가고 싶을 때 맘대로 가지만, 그 때는 발달이 되지 않아서, 겨우 이런 追億이 한 번 있다는 것이 안 됫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초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서니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됬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오면 가사일을 도왔기 때문에 공부에 전념할 수 없던 탓에 성적은 중간 부분이었습니다. 중3 때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 났습니다. 중 3때 통학길에 학교 앞에서 내리는 순간 학생들의 충격과 근심어린 심경들로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교는 술렁 거렸다고 들 하십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칼라TV가 나올 당시, 중학교 시절 3년을 무사히 보낸 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 학교 시절에도 학교에서는 공부, 집에서는 가사일 돕기를 했으니 성적은 별로 안 좋았습니다.
평소에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셨기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보다는 어머니의 일선을 도와야 겠다는 마음이 늘 있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3년 생활을 탈 없이 보낸 후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안 가정 형편상 대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어 고등학교를 졸업과 함께 사회로 진출을 했습니다.
사회 생활은 서대문구 신촌에 있는 큰 상가 내에서 의류 판매원을 종사하는 것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맞는 길도 아니고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아서, 퇴직을 하고 나서… 또다시 10월에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작은 기업체에서 사무일을 했답니다. 대학에 가지 못하고, 이런 일만 한 엄마가 안 됬습니다.
이런 생활을 열심히 하던 중, 노태우 제 13대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 1988년 1월 18일에 아빠와의 運命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당시 뉴스타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맘에 들어 계속 만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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