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의 역사 종교개혁자들의 성경해석
첫째로, 성경의 최고 절대 권위를 성경해석의 최고원리(Hauptfundament)로 삼았다. 그는 “교회는 신앙의 조항들을 창조할 수 없다. 종이 주인의 인장을 인식하고 고백하듯 교회는 그것들을 인식하고 고백할 뿐이다.” 라고 말하며 교회, 교부들, 교황, 회의들의 권위 위에 성경이 있다고 보았다.
둘째로, 그는 성경의 충족성을 주장하였다. “내가 성경을 요청하면 에크는 내게 교부들을 제시한다. 내가 태양을 요청하면 그는 내게 그의 랜턴들을 보여준다.” 그는 심지어 주석도 필요 없고 성경만 필요하다고 하였을 정도이다.
셋째로, 그는 중세의 4중 의미를 부정하였다. “신학교들에서는 성경이 네 가지로, 문자적, 풍유적, 도덕적, 천상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 잘 알려진 규칙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성경을 바로 다루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의 단순하고 적절하고 확실한 문자적 의미’를 얻는 한 가지 노력만을 해야 할 것이다.” “각 구절은 하나의 분명하고 명백하고 진정한 그 자체의 의미를 지닌다. 모든 다른 것들은 의심스럽고 불확실한 의견들이다.” 그에 따르면 복합적인 지성(multiplex intelligentia)이 성경의 전체적인 의미를 파괴했고 성경의 확실한 의미를 박탈했으며 허황된 인간의 유오성을 계시 영역으로 전이했다는 것이다.
넷째로, 루터는 풍유의 타당성을 거부했다. 그는 “오리겐의 풍유들은 그만한 흙만큼도 가치가 없다.” “풍유화는 단순한 원숭이 장난으로 전락될 수 있다.”고 말함으로 풍유에 대해 극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다섯째로, 그는 성경의 명료성을 주장하였다. 성경은 구원에 필요한 단순한 진리들에 있어서는 완벽하게 명료하나, 많은 다른 주제들에 있어서는 불확실한 의의를 가진다고 보았다.
여섯째로, 그는 개인의 성경 해석권(만인 제사장직)을 주장하였다. 그는 평신도와 성직자의 벽을 허물면서 평신도와 성직자는 직무상의 차이가 있으나 영적 권리의 차이는 없다고 보았다.
일곱째로, 루터는 성경해석 규칙들도 문법적 해석, 때, 상황, 조건을 고려할 필요성, 문맥, 신앙과 영적 조명의 필요성, 신앙의 유추(성경은 성경으로, 성경의 유추: 그런데 후에 교리의 유추가 되어 Protestant scholasticism의 길을 열게 됨), 모든 성경과 그리스도와의 관련성(바울 서신들을 공관복음보다 더 복음적으로 보고 요한복음, 로마서, 베드로전서를 “모든 책들의 알맹이와 골수”로 봄으로 “정경 속의 정경”의 문제를 야기함)등을 제시하였다.
2. 칼빈(1509-1564)
칼빈은 “주석의 최고의 미덕은 간단 명료성에 있다(Praecipuam interpretis virtutem in perspicua brevitate esse positam)”고 하였다. 그는 주제들은 따로 모아서 「기독교 강요」에 담고 주석은 주석으로 분리하여 취급하였다. ‘명료성’(perspicua)의 원리란 주석가가 저자의 마음을 나타내주는 수사적 방법(조명)을 가리키고, ‘간단성’(brevitas)이란 적실성(適實性)을 가리킨다.
칼빈의 ‘간단 명료성’ 원리는 성경에 후대의 교리들을 읽어 넣는 다든가 비교 역사적인 자료를 읽어 넣는 것을 배제한다. 성경 주해에 인간적인 자유를 행사하거나 본문의 역사적인 의미를 찾지 않고 단순히 본문에서 교리들의 열매를 따내는 것도 배제한다. 그가 강조하는 해석의 핵심 원리는 본문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또 부분적으로 하나도 빼지 않고 본문에서 이끌어 내는 것을 말한다.
칼빈의 ‘간단 명료성’ 원리는 그의 설교에도 반영되었는데 그는 당시의 문화나 시류적 토픽에 대하여 말하거나 교회력에 따라 설교하지 않았고, 성경 한 책을 택해서 연속적으로 설교하되 대지도 인위적으로 나누지 않고 그냥 성경 본문의 흐름에 따라 한 구절 한 구절 빼지 않고 설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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