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6·25전쟁의 주요 무대가 된 것을 생각해 보면 잦은 연행과 구금, 옥살이로 이 땅의 고통스런 세월과 함께 살다간 조태일 시인의 역정은 마치 예견된 것만 같다. 어린 나이에 여순사건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피의 역사를 체험한 조태일 시인. 이런 외적 내적 체험이 훗날 그의 시 속에 혼재하는 원초적 생명력(천진성)과 역사의식(저항성)의 토대를 이루게 된다.
경희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아침 선박》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식칼론》(1970),《국토》(1975),《가거도》(1983),《자유가 시인더러》(1987),《산속에서 꽃속에서》(1991),《풀꽃은 꺾이지 않는다》(1995),《혼자 타오르고 있었네》(1999) 등 8권의 시집과 시론집 《고여 있는 시와 움직이는 시》등을 냈는데 특히《국토》연작시와 《식칼론》연작시로 1970년대 우리 시의 저항성에 일획을 더했다. 조태일에게 국토는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혼으로 상징되는 소외된 민중의 다른 이름이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라고 국토에 대한 숙명적 사랑을 노래했던 시인은, 간암으로 99년 9월 7일, 58세의 나이로 그가 노래하던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그곳"에 묻혔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국토이고, 오매불망 국토를 노래했던 시인의 유택이 되었다. 그는 28세 때 "내가 죽는 날은 99년 9월 9일 이전"〈간추린 일기 中 〉이라고 썼다. 미래를 예언한 그의 시참(詩讖)이 서늘하다.
그가 사랑한 국토의 곳곳에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로 올곧게 삶을 살고자 했던 조태일. 이 땅의 주인인 그들을 위해 일렁이는 피, 다 닳아진 살결, 허연 뼈까지 보태리라는 시인의 뜨거운 의지가 숭고하다. 우직한 성품을 가졌던 그는 하는 행동도 그랬지만 시도 그의 고향 태안사의 계곡 물소리만큼이나 거침이 없었다. 쉽게 읽혀지지만 그러나 결코 만만치 않은 조태일의 시편들을 만나 보겠다.
Ⅱ. 조태일의 시 세계
조태일의 시 세계는 ‘불꽃’(격정적, 현실에 대한 시)에서 ‘풀꽃’(관조적, 자연사물에 대한 시)으로 옮겨가는 여정이 매혹적으로 그려져 있는 한편 그 근저에 원초적 생명성에 대한 강한 긍정과 복원 의지가 일관되게 깔려 있는 세계이다. 즉 조태일의 시적 여정은 저항성과 천진성이 공존하고 길항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한 세계에서 한 세계로 옮겨간 단층도 비교적 뚜렷한 편이지만 그 저류에는 이 두 가지가 통합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를 “외적 관심과 내적 관조가 지속적으로 공존하는 가운데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고 좀 더 근본적인 충동으로 표면화되는 시인”이라고 평한다.
1. 초기 시 - 원초적 심상과 저항 정신
1960년대에 그는 활달한 기백과 거친 음색으로 다량의 작품을 산출하여 과 이라는 두 권의 시집을 상재한다. 1960년대 시단의 주류를 점했던 모더니즘 취향의 난해성이 일정 부분 침투하기는 했지만 그의 초기시편에서 그것은 창백한 애수의 이미지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 혹은 기백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1970년대 민중적 서정시의 한 원형을 1960년대에 예비했다고 할 수 있다.
피묻은 피묻은 처녀막을 나부끼며
아프고 피비린 냄새를 풍기며
한국문단사 1970, 문학과 지성사, 김병익, 2001
조태일 시 정신 연구, 이동순, 2005
탈 식민주의 관점에서 본 조태일의 시세계, 박몽구
생명의 힘, 생명의 역사:조태일 시의 의미, 김경복, 2001
조태일 시 연구, 민경헌, 2004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