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넘은 자식에 대한 사랑 영화 IAmSam을 보고
이 영화를 보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지속적으로 떠올랐다. 과연 ‘지적장애인도 아이에 대한 양육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주인공인 샘은 한 아이의 아버지이다. 하지만 그의 지적능력은 7세에 머물러 있어 그의 딸 루시에 대한 양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루시가 커감에 따라 자신의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자신이 아버지보다 지능이 높아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루시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올바르게 성장할지가 의문이다.
아동복지기관에서는 샘이 정상적인 양육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법적 절차를 통해 루시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샘은 변호사 리타를 고용한다. 샘과 리타는 루시의 입양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결국엔 루시는 입양되어진다. 이 과정에서 루시에 대한 샘의 사랑의 필요성이 극으로 부각된다. 비록 지적장애를 가져 딸보다 낮은 지적능력을 가졌지만, 샘은 루시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며 루시에게 무한한 애정을 준다.
이와 같은 샘의 모습은 리타와 대조되는데, 리타는 현대사회에 발맞추어 높은 사회적 지위와 재산을 가졌으나 가정의 행복을 이루지 못한, 특히 아이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어머니상으로 비추어진다. 샘과 리타를 비교·대조해 보며 리타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보았는데, 리타에게는 샘이 가지고 있는 ‘동심’ 혹은 ‘아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마음’이 없었다. 샘은 낮은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만큼 ‘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누구보다도 순수했다. 그 순수한 마음이 루시에게 통했기 때문에 루시가 그토록 샘과 떨어져 있기 싫어했다고 생각한다.
리타는 재판 중에 샘을 변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능이 곧 사랑의 능력을 저울질 하는 척도는 아닙니다.” 말 그대로 사람의 어느 한 부분으로 그 전체를 평가할 순 없다. 따라서 무조건적으로 샘이 지적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루시를 잘 양육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샘은 다른 부모들과 다르게 자식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방법을 잘 안다. 또한 루시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 분명 자식에 대한 사랑의 정도가 샘을 넘을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다시 샘의 루시 양육에 대한 나의 의문점을 되짚어 본다. 분명 샘은 지적장애를 가져 낮은 지능을 가졌지만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자식에 대한 사랑과 노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루시에 대한 양육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환경은 양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모의 경제력은 아이에게 편안한 학습 환경과 주거 환경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돈은 아이가 필요로 하는 물질적인 것을 최대한 제공해 줄 수 있게 해준다. 자식에 대한 사랑만이 양육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란 의미다. 따라서 루시에게 사랑밖에 줄 수 없는 샘은 루시를 잘 양육하지 못 할 것이다. 만약 샘이 루시를 양육한다면, 루시에겐 사랑을 제외한 재화의 부족함만이 남을 것이고, 커가면서 자신의 부모에 대한 혼란감과 자아정체성 혼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루시는 양육되어 길러지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양부모는 비록 친아버지인 샘과 같이 루시에게 사랑을 전달하는데 부족함이 있을 수 있으나, 루시가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나을 것이다.
영화 결말에서, 비록 양부모는 샘에게서 루시의 양육권을 뺏었으나 루시에 대한 샘의 사랑의 필요성을 느끼고 샘에게 지속적으로 루시의 곁에서 사랑해 줄 것을 부탁한다. 참으로 이상적인 결말이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교훈 두 가지를 얻었다. 첫째는 지적장애인도 우리보다 뛰어난 영역이 있으므로 그들을 열등한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아이를 양육하는데 필요한 것은 많지만, 아이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아이를 이해하는 마음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간과하지 말아야할 교훈 두 가지를 얻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감상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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