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적 : 71,740 km2 [대한민국(남한) 면적 : 98,480 km2]
표준시간 : GMT 0
기후 및 자연환경
시에라리온은 크게 해안 늪지대, 시에라리온 반도, 내륙평원, 고원지대의 4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해안 늪지대는 평평하고 고도가 낮으며 폭이 32∼64km인 범람이 잦은 평야이다. 시에라리온 반도는 프리타운이 위치한 곳으로 해안 늪지대에서부터 점차 높아져 피켓 구릉에서는 높이가 888m에 달하는 나무가 울창한 산간지대이다. 내륙평원은 단조로운 초원과 기복이 완만한 삼림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형이 사바나로 덮인 낮은 평원에서 바위가 많고 가파른 경사지와 구릉지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원지대는 대략 시에라리온의 동쪽 절반의 면적을 차지한다. 이 고원지대에는 높이 1,949m의 빈티마니 봉(시에라리온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 있는 로마(Loma) 산맥과 1,853m의 산칸비리와 봉이 있는 팅기 구릉지대를 포함해 여러 개의 산괴가 있다. 수많은 강이 대체로 북동에서 남동방향으로 시에라리온을 관류하여 대서양으로 흘러든다.
기후는 열대성으로 기온과 습도가 높고 강우량이 매우 많다. 월평균기온은 해안에서 25∼28℃이고, 내륙에서는 23∼28℃에 분포한다. 해안지방의 강수량이 가장 많으며, 특히 페닌슐라 산맥은 연간 5,080㎜의 강수량을 기록한다. 11∼4월이 건기이며 나머지 기간이 우기로, 7∼9월에 비가 가장 많이 내린다. 국토의 1/4 이상은 삼림지대로 카야(아프리카산 마호가니), 아프리카산 티크와 같은 귀중한 목재가 많다. 코끼리·표범·사자·하이에나·물소와 같은 큰 사냥감은 잘 볼 수 없으며, 원숭이·침팬지·살쾡이·호저(豪猪)·영양·악어 외에 여러 가지 조류 등이 서식한다. 3,000㎢의 삼림보호지대와 약 130㎢의 보호림이 있으며 목재는 자급할 정도이다. 국토의 약 1/4이 가경지이며 30%는 영구 목초지이다. 광물자원이 널리 분포한다. 세와 강 상류에서는 다이아몬드 충적 광상이 발견되며, 1930년대부터 상업적 채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밖의 광물로 철광석·보크사이트·금홍석(이산화티타늄) 등이 있다
역사
시에라리온은 ‘사자산(獅子山)’이라는 뜻으로, 15세기에 포르투갈인(人)들이 들어왔을 때 해안 산지에서 울리는 천둥소리를 듣고 지었다고 한다.
최초의 정착민은 해안에 사는 불롬족이었으며, 15세기에 멘데족과 템네족이 시에라리온으로 이동해왔다. 원래 세네갈에서 살던 풀라니족은 이 지역의 북부로 이동해왔으며, 포르투갈인들은 해안지역에 들어와 1495년에는 지금의 프리타운 자리에 포르투갈 요새를 세웠다. 식민지의 역사는 1787년 영국에서 이송되어 온 351명의 북아메리카 해방노예와 60명의 백인여성들(런던의 매춘부)이 정주하면서부터인데, 당시 내륙에서는 풀라니족의 침략으로 쫓겨난 템네족이 이들을 습격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도 해방노예의 정착은 계속되었으며, 1792년에는 캐나다의 노바스코샤로부터 약 1,100명의 해방노예가 이주하여 그들의 거주지로서 개인출자로 프리타운을 건설했다. 그 후 영국해군이 대서양에서 나포한 노예선에서 풀려난 아프리카인들도 프리타운에서 살게 되어 1850년까지 해방노예의 수는 약 7만 5000명이나 되었다. 1896년 영국은 내륙지방을 보호령으로 선언하고 가옥세(家屋稅)를 부과하였기 때문에 템네족과 멘데족의 반란이 일어났다. 그 당시까지 크리올인은 영국인과 마찬가지로 고급관리·고급군인·상인계급으로 진출할 수 있었으나, 그후로는 차별과 압박을 받았다. 그리하여 1920년대부터는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났으며, 1924년에는 입법심의회(立法審議會) 일부 의원의 선거가 실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자주독립을 지향하는 움직임을 강화하였으며 1951년에는 내륙의 보호령 출신인 밀턴 마게이(마르가이)가 프리타운과 보호령의 민족통일을 목표로 하는 정당을 만들었다. 1961년 4월 27일 독립, 마게이는 초대 총리가 되었다.1967년 군부가 민간정부를 전복시켰으나, 1년 후 군정부가 추방되어 민간통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시에라리온은 1971년에 공화국이 되었으며 1978년에 일당제 공화국이 되었다.
1787 영국의 식민지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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