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치료와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2. 사르트르의 사상
사르트르는 존재를 구분함에 있어서 ‘즉자존재’와 ‘대자존재’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즉자존재’는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나 사물처럼 항상 그 상태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대자존재’로서의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스스로를 선택한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 각자가 스스로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인간이 각자 스스로를 선택함으로서 모든 인간을 선택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고 했다.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과 인류에 대한 책임은 불안이라는 개념을 낳는다. 세상에 던져진 인간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한다. 이러한 선택은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이기에 그 선택은 가치를 갖게 된다. 하지만 선택은 자유를 전제로 하지만 다른 가능성에 대한 불안 또한 낳게 된다. 그리고 이 선택에 따른 책임과 불안은 타인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사르트르가 보기에 ‘선택’에 뒤따르는 책임과 불안은 인간의 실존이 지닌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숱하게 하게 되는 ‘선택’ 속에서 ‘책임’과 ‘불안’을 동시에 느낀다. ‘이 길이 과연 맞는 걸까?’, ‘내 선택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 등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이런 질문 속에서 자신의 판단과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한다. 하지만 사르트르 식으로 말하자면, 정답은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선택을 하는 ‘나’의 몫이고 ‘나’의 책임인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한 답을 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이유는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한 가능성에 대한 확신과는 별개로 누구나 다른 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그것은 자신의 선택에 뒤따르는 ‘책임’(‘나’와 ‘인류’에 대한)의 무게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불안’은 때론 사람들에게 나약함으로 비춰진다.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을 나약함의 증거라고 판단해버린다. ‘그렇게 불안해한다면 너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확신을 할 줄 모르는 나약한 존재인거야.’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을 감춘다.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스스로가 나약한 존재로 비춰질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존주의에 따르면 ‘불안’은 자유로운 인간의 실존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감정이다. 불안을 ‘행동 자체의 일부분’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즉 ‘불안’은 자신이 그만큼 자유로운 선택권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말해준다. 그러니 불안을 나약함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로움을 포기하는 것이 비겁한 것이다.
이러한 불안 속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무언가를 선택한다. 그리고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은, ‘모든 인간을 선택하는 것’이며 ‘우리가 되기 원하는 인간을 창조하는 행위’이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인간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선택’의 행위는 ‘타인’의 존재에까지 지평을 넓힐 수밖에 없다. 단순히 내 맘대로 산다는 식이 아니라, 누구나 원하고 누구나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을 창조하는 자유를 말한다.
3. 적용 가능한 문제 및 한계점
자기주장이 강하지 못하고 의존적인 내담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나 우리나라 학생들 중, 일부 학생은 선택의 길에서 주체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고 부모 혹은 주변사람의 영향을 받아 선택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어 주변의 눈치를 보고 주체적 판단을 하지 못해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며, 자신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누군가가 이끌어주기를 원하는 수동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사르트르의 치료를 도입하면 자신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을 열어주며 자신의 문제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음을 직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사상은 주체적인 사상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공동체 집단 안에서 문제가 될 수 있고 또한 인간이 보편적 본성개념을 벗어나 각자 스스로 원하는 이미지를 창조해 나간다는 사르트르의 논리가 인간의 양심에 대한 문제를 설명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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