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건 두 개의 시선 종교에서의 다문화 정신 이슬람을 중심으로
공주는 예쁘고 왕자는 잘 생겼다.
사실여부를 보지 않고 당연히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방식. 틀에 박힌 생각.
고정관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사실의 여부를 떠나 오랜 공동체 생활에서 비롯된 하나의 관념들은 집단 이기주의를 형성하고 자문화중심주의의 또 다른 배타적 대중심리로 타민족의 안녕을 위협하는 것이다. 민족적 자긍심이 상당히 대단한 유럽이나 제국주의의 열망에 사로잡힌 막강의 미국, 그리고 유럽에 오랫동안 지배 받아온 아시아나 아프리카 역시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있지만 민족주의의 위세는 대단하다.
10장을 읽으면서 나 역시 얼마나 한 패러다임에 종속되어, 한 가지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결론지어버리는 오류를 범해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해당 지역의 문화를 순화시키고, 기존 문화와의 공존을 최우선적으로 구축했던 이슬람의 정복전쟁, 강압이 아닌 강자의 편에 붙었을 때의 여러 편리한 생존전략과 세금감면이라는 현실적 동기부여에 의한 대량 개종, (이는 한번 이슬람을 받아들인 지역과 주민이 원래의 종교나 이념으로 개종한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게다가 오히려 대량개종은 국가 조세수입을 감소시키기에 경계했던 모습, 무슬림과 유대교도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던 십자군 전쟁과 달리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았던 살라딘의 가르침, 자신과 다른 종교와 이념으로 강제 개종을 금지한 코란의 소수민족 보호 가르침, 이슬람 사회에서 자신의 고유한 문화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허용된 이교도 딤미의 법적 보호와 이와 동시에 딤미가 이슬람사회에 종속된 하위시민임을 망각하지 않도록 했던 그들의 합리적인 방식들을 접하면서 많이 놀랐다. 아니 충격적이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언론과 기독교라는 틀 안에서 본 이슬람은 911테러와 자살폭탄테러, 그들의 극악무도한 잔인성과 배타성이었다. 물론 지금 그들은 자살 특공대가 되어 자신의 몸을 던지고 있고 폭탄테러라는 극단의 비극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쟁의 시작은 무엇이었는가, 유럽 기독교 사회가 버리고 박해했던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 땅에 불러들여 이슬람을 믿는 아랍인들을 몰아내고 그곳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세워준 1948년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고, 이방종교라는 이름으로 배척하고 빼앗고 고통을 주었던 그동안의 모습을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이슬람의 테러를 그들의 입장에서 대변하고 두둔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 또한 역시 지금의 모습은 그들이 믿는 종교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성경책을 탈탈 털어서, 줄이고 줄이면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남는다고 한다. 이슬람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와 정의, 친절과 선행을 베풀 것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런 다문화의 충돌은 종교 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종교를 악용하고, 자신의 독점적 지위와 가치만을 돋보이게 하려는 ‘사람’들에게 있음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11장 사상에서의 ‘같음’과 ‘다름’의 문제에 관해
마지막 세 번째 결혼은 좀 달랐습니다. 이혼한 지 3년이 되었을 때 만나 2년간 교제했습니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처음엔 그것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진실로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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