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모국어 체험과 말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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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석의 모국어 체험과 말의 축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시에서 언어는 단순히 관념이나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도구성의 성격과 언어 그 자체의 미학적인 측면을 드러내고자 하는 자율적인 성격의 이중성을 지닌다. 1930년대 시인들에게 시 언어의 형식 문제는 중요한 문제였다. 임화는 문화어, 교양, 지성의 목표로서 시의 언어 문제를 제기한 바 있고, 박용철이나 백철은 민족혼과 정신의 표현으로서 언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하나는 언어 미학의 보편주의를 주장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언어 (모국어)에 내재한 민족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백석은 언어의 보편주의적 성격과 민족혼의 구현으로서 언어의 성격을 동시에 증명한 시인으로 평가할 만하다. 백석이 1936년 자비로 『사슴』을 발간하자 많은 문인들이 이 시집에 관심을 표명했다. 백석의 시에서 특이하게 쓰이고 있는 정주 지방 방언은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성격보다는 모더니티의 세련된 감수성을 밑바탕에 깔고 있었다.
1930년대로 접어 들면 모방과 유행에 민감했던 모더니즘의 시들이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지만 점차 그것은 ‘기교주의 논쟁’과 같은 문단 내적인 논의를 거치면서 극복되고 있다. 특히 3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서는 모더니즘의 자기 갱신이 논의의 중심에 떠오르면서 언어에 대한 시인들의 의식도 변화를 보인다. 특히 신진시인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들의 모국어 사용은 정밀하다. 그들은 일본어가 공적 국어이고 조선어는 변방어였던 시대를 체험한다. 변방어로서의 조선어 체험은 토속적인 어휘와 고향의식을 통해 극화된다. 언어는 정치적 현실적 억압을 뛰어넘어 강한 생명력 그 자체로 소유하고 있는 존재임을 입증한 것이다.
민족어가 민족의 생존문제와 직결된 것임을 당대의 작가와 독자들은 직감하고 있었다. 언어는 현실에서 억압적으로 존재하는 권력적 지표들을 관통할 수 있는 강렬한 힘을 저장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의 당사자들이 피지배 민족의 언어 사용을 금하고 자국어를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바로 언어가 갖는 강력한 현실 저항성을 금제하고자 한 것이다. 언어는 그 자체로 한 언어 공동체의 혼과 정신을 내장하고 있다.
점차 일제 암흑기를 맞아 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절대적으로 열악해지면서 역설적으로 우리 시의 언어는 최고의 정상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언어의 이 같은 자생적 생명력은 현실의 권력적 억압을 비틀고 쥐어짜내는 역할을 한다. ‘ 언어’는 단순히 ‘현실’을 해석해 내는 차원에 있지 않고 그 자체로 자율적인 생산 주체가 된다는 언어 자율성 이론은, 언어가 현실을 재구성하는 힘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토속어와 지방성’을 개인적 초월의 문제로, 언어감각이나 기교의 수준으로 이해할 수 없다. 언어는 그것이 토대하고 있는 현실적 차원이나 정치성의 맥락과 깊숙하게 관련되어 있다. 1930년대 시는 지방적인 것, 조선적인 것을 자기 내적 정체성으로 확립하려고 한 일련의 시인들의 등장과 함께 그 질적 성장을 이루어 나갔던 것이며 그 한가운데 백석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2. 백석 시의 네 가지 층위와 특징
백석 시는 네 가지 층위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세련된 이미지를 구사하고 모더니티적인 감수성을 뚜렷하게 드러낸 「주막」「정주성」「사비」「노루」「청시」와 같은 단형의 시들이다. 단형이지만 감정이 극도록 절제되어 있어 이미지를 극세화하고 선명하게 하는 집약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뛰어난 이미지즘의 시인 듯 보이지만 이미지 속에 살아있는 언어의 혼을 느낄 수 있다. 이미지는 단순한 도상적 기호가 아닌 정신적 산물임을 확인하게 된다.
두 번째는 정주 지방의 방언을 두드러지게 사용하면서 정주지방의 습속과 풍물들이 거침없이 나열한 경우이다. 「가즈랑집」「고방」「고야」「여우난곬족」과 같은 시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시편들은 특히 정주지방 방언 사전을 참조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두 번째 부류는 지금까지 주로 ‘리얼리즘시’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 왔다. 이 시편들은 민중성, 민중의식 등을 포괄하고 있고 철저하게 토속적인 것과 방언에 기대고 있으며 판소리 사설조의 가락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 시편들이 이야기성 또는 서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백석의 시에서 유년의 세계는 상상적 세계, 무갈등계로 재현된다. ‘마을 공동체의 질서’를 읊을 때 시적 자아의 시선이 유년의 시선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북관이나 만주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이나 자신의 빈궁한 처지를 그릴 때는 성인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음을 눈여겨 보자. 이는 그가 그리고 있는 유년의 세계가 초월적 세계이거나 신비한 삶의 모티프로 머무르지 않고 1930년대 현실의 맥락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가 남행이나 북관, 그리고 만주등지를 여행하거나 머물면서 쓴 시들이다. 여행 시편 혹은 유랑시편들이 속한다. 특히 이 세 번째 부류에는 연작시편들이 많다는 것이 눈에 띈다. 변경의 언어는 유랑의 언어, 상실의 언어이다. 백석에게는 무정치적 탈갈등의 공간으로 표상된 ‘유년기 공동체’라는 상상의 공간이다. ‘상상’이 ‘현실’이 되지 못하는 것, 거기에 유랑의식의 본질이 있다. 이를 우리는 백석 시의 정치성이라고 부른다. 1930년대 우리 시사에서 가장 광범위한 주제의 하나였던 ‘고향, 망향, 향수’들의 주제들은 상실 이전의 것에 대한 강렬한 지향성을 감은 것이다. 백석에게 상실 의식은 완전하게 구현된 공동체 의식을 향해 있다. 그것은 그의 유년기 삶의 일상성이 사라진 지점을 추억함으로써 절정을 이룬다. 자신의 유년을 지배하던 일상의 풍요로움은 그 무의식의 순금 부분을 이룬다. 그가 그려 낸 ‘상실’과 ‘유랑’의 의식은 이 순금 세계의 이면이다. 당대 시인들의 고향상실이 ‘유랑’의 정서로 표출되었다는 점이 바로 30년대 현실이 갖는 정치적 맥락이다. 백석은 남도를 여행하고, 함흥의 영생고보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신경에 가서 가난한 삶을 꾸린다. 그의 유랑을 낭만적인 편력 의지의 소산만으로는 보기 어렵다. 백석은 기질적으로 타인과 소통하며 지내는 ‘인간권 내의 생활’을 싫어했다고 하는데, 그가 통영이나 함주에서쓴 시들은 이러한 시인의 고립감과 허무의식이 드러난다. 이 고립감과 허무의식이 지배적인 기행시편들에서도 결국 시인이 지향하고 있는 곳은 ‘유년세계’, ‘고향’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만주 등지에서 씌여진 시들은 현실에 대한 자각적인 인식을 담은 시편들도 있다. 「촌에서 온 아이」「조당에서」「귀농」과 같은 시들은 가난과 소외에 대한 인식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비애라는 정서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먼 이역에서의 소외와 고립감은 자신의 역사를 새롭게 구성해 보도록 시인을 충동하는데 그것이 「북방에서」「목구」「흰 바람벽이 있어」등과 같이 ‘족보’를 시 속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정주지방이라는 지역성과 개인적인 체험의 영역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그 곳에서 민족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신을 편입시킬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