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사회의 중국 여성과 중국 사회관계의 특징
하지만 명(明)-청(淸) 시대를 거쳐 중국 근세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지위는 현재의 모습과는 천양지차였다. 중국 여인들의 사회적 지위는 남성들의 성적 노리개나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고, 심지어 재산과 물건처럼 선물로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이러한 여성 지위는 1911년 신해혁명을 전환점으로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외국의 새로운 문물과 신사상의 유입 및 근대교육의 영향으로 상승되어, 예전 남성으로부터의 종속관계에서 평등관계로 발전하였다는 것이 중국인들 스스로의 분석이다.
여성 지위의 변화
왕조시대 전기간에 걸쳐 중국의 남성과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동등하지 못했다. 사유재산제의 성립과 농노 사회진입이라는 인류문명의 발전과 함께 여성의 지위는 남성의 지위속에 속하게 되었다. 이런 남존여비 사회현상은 이후 수천년동안 지속되어 왔으며 동시대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종속을 이루었다.
왕조시대 전기간 중 초기 몇 세기 동안 여성의 지위는 명청시대보다 현저히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송말에 이르러 신유학(新儒學)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엄격한 가부장제 중심의 여성규범이 강화되어 이전에 누리던 여성의 자유는 억압받기 시작하였다.
소녀와 어린 시절
이 시기 여성은 부모에게 달갑지 않은 존재였고, 노동력이 되지 못하는 딸은 당연히 아들에 비해 많은 차별과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 성장하면서 여성은 정신적으로는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신체적으로는 부모의 체벌과 여성을 종속화하고 남성의 지배를 확실히 하기 위한 수단인 ‘전족’으로 압박받았다.
여성과 혼인
왕조시대의 혼인은 가족을 위한 정략적인 것이었다. 결혼은 한 가족의 계보를 잇고, 집안의 명성을 높이고,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특별한 혼인 형태가 두 가지 있는데, 이는 동양식(童養)과 서입혼(入婚)이다. 먼저 동양식은, 소녀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남성의 집안으로 입양되는 것이었다.
서입혼은 딸과 결혼하여 처가에 살 의향이 있는 남자를 처가로 데려오는 것으로, 여러 가지 형태가 있었다. 신랑이 마치 남성 며느리처럼 생가와 관계를 단절하고 처가의 성을 취하는 형태가 있었으며 또다른 형태는 서입된 남성이 자신의 본래 성을 지닌 채 자식 중 몇 병을 처가의 계보에 넣고 일정한 기간동안 처가에 거주하는 것이었다.
사회적 상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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