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여성들 산업화 근대화 과정에서 희생된 여성들의 삶 재조명
2.여성의 기지촌 유입 배경과 정부의 두가지 방침
①여성의 기지촌 유입 배경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많은 남성들이 징집되어 부재한 상황속에서 여성들이 생계를 위해 사회로 나가야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뭐든지 해야했고, 아픈 부모와 동생들, 혹은 자식들을 위해 매춘을 해야만 했다. 그 이후 1970년대 산업 자본주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할 수없는 하층민 여성들이나, 또는 가족을 부양하기위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 들었던 농촌 출신의 여성들은 창녀로 전락한다. ‘월수 이십만원 보장’이란 허위광고 등을 매개로 이들은 산업화의 명암속에서 저임금 여공이나 식모로 출발하여 결국 기지촌으로 전락해가는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된다.매춘은 결코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변두리의 상황이 그들을 내몬것이라 할수 있다.
김연숙,양공주가 재현하는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
이정옥, 산업자본주의 시대, 여성의 삶과 서사
②정부의 두가지 방침
- 묵인하기: 제도적 공고화
1950년대 초반 당시 주한 미군들은 5일간의 휴가기간 중 일본으로 날아가 성매매 업소를 전전하였다. 외화벌이를 위해 정부는 미군부대 주변의 댄스홀과 바 등을 내국인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미헌병대에 국역 통제권을 부여함으로서, 미군이 한국 국민의 간섭을 받지 않는 안전한 곳에서 성적 위안을 받도록 배려하기 시작했다. 또한 포주들은 ‘창녀’들을 등록시키고 미군 지휘부와 직접 교섭하기 위해 ‘위안부자치대’를 조직하였다. 전후 국가건설 과정에서 기지촌이 한국정부의 주요한 외화벌이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앞장서서 기지촌을 체계화 하기 시작했다. 또 이것은 안보가 쟁점이었던 시절 미군의 주둔은 반드시 필요한 한국과 군인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했던 미국정부의 입장과 맞아떨어져 가능했다.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은 경제발전 논리에 의해서 관광산업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윤락행위등방지법’에 명시된것과는 모순되게 섹스관광을 육성하기 위해 관광산업진흥법제정, 국제 관광공사를 설립하는등 제도적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실제 기지촌 산업은 대한민국 전체 GNP의 25%를 차지하였는데 이중 절반은 성산업과 관련된 것이었다.
- 기지촌 정화 운동
1969년 닉슨 독트린으로 야기된 미군 철수논의가 대한민국 전반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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