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안의 이질적 공간, 기지촌
그리고 기지촌 여성
: 민간외교관에서 양갈보로...
Ⅰ. 서론 : 주제선정 동기
2005년 제 7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마마상’이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마마상을 통해 나는 기지촌에 ‘그 후’가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기지촌에서 기지촌여성의 삶은 기지촌의 방식에 뿌리를 두고 변화하며 계속되고 있었다. 문득 여성학 시간에 보았던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유린을 다룬 영상물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미군이 자행한 폭력과 만행은 끔찍하고 잔인했지만 그 악행의 대상은 나와는 다른 ‘윤락녀’였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자존감과 도덕심을 버린 그들에게는 ‘우리’와는 다른 인권수준이 적용되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걸까? 어쩌면 기지촌여성을 나쁜 여자로, 내가 포함된 성매매업에 종사하지 않는 여성들을 좋은 여자로 분류하는 것이 나를 보호하고 여성의 존엄성을 지켜 떳떳해지는 방법이라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조금씩 전쟁의 실상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나는 기지촌을 새롭게 인식했다. 기지촌은 단순히 타락하고 천박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돈벌이(이것은 특히 기지촌여성을 더럽다고 인식하는 근거이다)가 아니었다. 우리가 그 존재를 부정하고 외면해온 기지촌은 한반도의 모든 모순이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곳이었다. 한미간의 민족주권의 문제, 분단의 문제, 빈곤의 문제, 성차별의 문제, 가부장제도의 문제 등이 기지촌에 담겨져 있다. 그럼으로 기지촌을 다양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려진 기지촌여성의 아픔과 소외를 해결하는 첫걸음일 뿐 아니라 한국의 현대사를 특정 공간을 통해 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시도이다.
Ⅱ. 본론
1. 기지촌의 정의
원래 기지촌이란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거주지와 상권을 일컫지만 오늘날 기지촌은 미군과 성거래가 이루어지는 섹스시장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이 글에서도 미군부대와 그 군인의 매춘공간을 기지촌이라고 정의하고 논지를 전개시키려 한다.
먼저 기지촌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기지촌의 역사는 한국매매춘의 역사이다. 한국매매춘은 일제군정시기 형성되었고 미군정시기를 통해 정착되었다.
1945~1950년이 미군기지촌의 생성시기이다. 미군정시기에 미군의 주둔으로 전국 곳곳에 미군기지가 생겼고, 미군들에게 군대매춘을 통해 휴양과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중요하게 내세운 미군관료들에 의해 급속도로 기지촌이 형성되었다.
1950~1960년대 말까지는 미군기지촌의 확산되며 기지촌매춘문화가 정착되는 시기이다. 미국정부의 원조와 함께 기지촌에서 벌어들이는 외화는 가난한 기지촌여성의 가족생계수단일 뿐 아니라 한국경제의 주요재원이었다. 한국정부는 미군의 안정적 주둔과 경제적 이윤을 얻기 위해 기지촌을 정책적으로 성장시켰다.
1970년~1980년 중반까지는 기지촌에 대한 한국정부의 통제가 가해진 시기이다. 1971년 미군당국은 미군의 성병문제가 심각해지자 한국정부에 기지촌정화사업을 요구했다. 미군의 감군 정책으로 신경이 곤두서있던 한국정부는 미군당국의 요구를 즉각 받아들여 기지촌여성의 성병진료에 힘을 쏟았다. 양정부가 기지촌매춘에 깊숙이 개입하고 집중적 관리와 단속을 실시하면서 오히려 기지촌여성은 성노예처지로 전락했으며 기지촌매춘은 공창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기지촌은 ‘전통형 매춘’과 ‘산업형 매춘’이 혼재하면서 변모해갔고 오늘날 기지촌에서는 신종매매춘이 대거 유입되고 외국인 성매매가 지배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기지촌이 ‘보호받는’ 새로운 성산업공간으로 변화하며 그 명맥을 끊임없이 유지해나갈 것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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