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가와 천하통일 한비자韓非子
●한비자의 생애
한비자는 정확하지 않지만, 전국시대 후기 한나라 호남성 서부에 있던 한나라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신분이 천해 인정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언어구사를 잘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에 비해 저술은 매우 뛰어났다. 한나라의 국왕에게 법가와 부국강병을 강조했지만,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반대로 적국이었던 진나라의 진시황이 그의 글을 읽고 감탄하며 "그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할 정도로 한비자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서 당시 한비자와 순자의 밑에서 동문수학한 이사가 진나라의 승상으로 있었는데, 한나라에 진나라에서 공격을 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한비자를 사신으로 오게 합니다. 진시황은 한비자를 만났지만 그의 언어구사력에 실망했고, 이사는 한비자를 질투하여 모함하여 옥에 가두고, 독약을 보내 자살할 것을 강요한다. 그는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진시황을 만나볼 기회를 간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진시황이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한비자에게 석방명령을 내렸을 때는 이미 그가 자살한 후였다.
●한비자의 사상
한비자의 사상은 법가로, 유가, 묵가 등이 정치적으로 이상주의적인 문치(文治)를 주장했던 데 비해 힘에 의한 부국강병책을 지향하는 냉정한 현실주의적 정치를 지향한 일단의 무리들을 말한다. 한비자의 법가학설은 복고를 견결히 반대했다. 한비자는 인애(仁愛)를 주장하는 유교학설을 반대하면서 법치를 주장하고 상벌을 엄하게 하며 농업을 중시하고 전쟁을 중시하는 4가지 정책을 제기했다. 한비자는 군권신수(君權神授)를 제창했다. 당시의 법가 사상가들은 국민을 위한 법이 아닌, 오직 전제 군주를 위한 부국강병책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오늘 날의 법 정신인 만민 평등의 관념과는 차이가 있었다. 또한, 법의 의한 통치의 근본 목적은 도의 실현이다.
●한비자의 법가사상 핵심
한비자의 사상에서 법술론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법이란 법령을 뜻하는데 한비자는 법은 국가통치의 근본이라고 강조했다. 법은 백성이 따라야 할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야 하며 아무리 평범한 군주라도 법의 운용만 잘 터득하면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술이란 법을 운용하는 방법을 말한다. 술은 군주가 혼자 가슴에 간직하고 남 몰래 신하를 제어하는 방법으로서 이 방법을 남에게 절대로 알려서는 안 되며 군주는 신하의 말이 진실인가를 꿰뚫어보는 재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여러 법가사상들, 즉 술(術), 세(勢)와 법(法)을 통합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지배를 추구하였다. 법(法)과 술(術), (勢)를 통합했다는 것은 법치(法治)의 운영방법으로서 술치(術治)와 세치(勢治)를 병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민(民)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법(法)이 필요하고, 관리를 부리기 위해서는 술(術)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법(法)과 술(術), 그리고 세(勢)는 제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라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법치(法治)의 기본은 철저하고 엄격한 상벌(賞罰)을 통해 사적인 것을 배척하고 공적인 것을 이롭게(排私利公) 하는 것이었다.
●한비자 글의 특징
한비자의 글은 구상이 째이고 묘사가 대담하며 언어가 유머적이고 여운을 남기는 글로서 세인들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한비자는 많은 우화 이야기와 풍부한 역사지식을 논증자료로 잘 이용해 추상적인 도리를 설명했고 자신의 법가사상과 사회, 인생에 대한 깊은 인식을 형상적으로 구현했다. 글에 인용된 우화 이야기는 그 풍부한 내적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생동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는 성어로 되여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한, 도리가 정연하고 필봉이 예리하며 의론이 투철하고 논증이 충분하며 요해를 찌르는 특징을 갖고 있다.
●본문 내용
* 어제의 토끼를 기다리는 어리석음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