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는 탈춤이 유명하여 그 고장 이름을따서 이 탈춤을 봉산탈춤이라 한다.
황해도 전역에 분포한 해서탈춤의 대표격으로 알려질 봉산탈춤은 그 극본의 과장과 내용으로 미루어 산도 대감 계통극의 한 분파로 얘기되고 있다.
예부터 해서의 각 지방에는 5일장이 서는 거의 모든 장터에서 1년에 한번씩은 탈춤놀이가 벌어졌는데 그중에서도 봉산은 남북을 잇는 유리한 지역적 조건 때문에 나라의 각종 사신(使臣)을 영접하는 행사가 잦았고 또 지방의 농산물이 모여드는 중심지였기에 더욱 이런 놀이가 성행하였다.
붕산탈춤의 중흥자는 약 200여 년 전 봉산군의 아전이였던 안초목이 란 사람이다.
그는 전라도 어느 섬으로 유배되었다가 돌아온 후 황토로 빛은 탈을 종이 탈로 바꾸는 등 이 놀이를 많이 변화시켰다.
남쪽으로 중부의 산대놀이 지역과 연결되어 다른 지방 탈놀이의 영향 을 끊임없이 받아 가며 개량되어 은 것으로 믿어지는 이 봉산탈춤은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신 앙적 성격이 강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종교적 요소보다 오락적 요소가 더 우세한 것으 로 보인다
그리하여 19세기 말기부터 해서탈춤의 대표적 놀이로까지 발전하였다.
이 놀이는 세시풍속의 하나로 5월 단오날 밤 모닥불을 피워 놓고 연희되며 새벽까지 계속된다. 5월 단오에 노는 것은 조선조말 이래의 일이고, 그 전에는 4월 초파일에 놀았다고 한다. 양주 별산대 놀이도 4월 초파일에 등불놀이와 함께 성대히 놀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특히 고려 이래의 연등행사의 전통을 이은 결과인 것 같다. 단오는 중부 이북 지방에서 남부 지방의 추석과 맞먹는 명절로서 성대히 지냈다. 시기적으로 이때가 모내기 직전의 망중한의 시기이며, 단오의 명절놀이로서 봉산기린서흥황주강령 등지에서 탈춤을 추어 온 것은 벽사와 기년의 행사로서, 또 하지의 축제로서 그 민속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종교의례적 행사에서 점차 오락 위주의 민중의 탈춤으로 발전되어간 것 같다.
산대놀이가 비교적 전업화된 놀이로서 관의 행사와 보다많이 관련된 것에 비하면 봉산 탈춤 등 황해도 탈춤은 주로 농민과 장터의 상인들을 상대로 한 놀이였지만, 역시 원님의 생일이나 그 부임날과 같은 관아의 경사와 중국 사신을 영접하는 놀이로도 특별히 연회되었다. 다른 군과의 연희 경연에는 5월 678일에 해주감영에 나가서 놀았고, 우승하면 감사로부터 후한 상을 받았다고 한다.
봉산탈춤은 원래 봉산 구읍 경수대(지금의 봉산군 동선면 길양리)에서 연희되었으나, 1915년경 군청 등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옮겨가고, 경의선철도가 개통되자 이놀이도 사리원으로 옮겨져 경암산 앞 경암광장에서 낮부터 여자들은 그네뛰기를 하고 남자들 은 씨름을 했다.
밤에는 장작불을 피워 놓고 탈놀이로 밤을 지새었다. 탈춤을 단오에 노는 것은 조선조 말 이래의 일이고 그 전에는 4월 초파일에 등불놀이와 함께 놀았다고 한다.에서 행해졌다. 이때, 놀이에 사용되는 비용은 지방의 유지나 상인들이 부담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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