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인권사상의 선구적 선각자 수운 최제우
35세가 넘을 때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을 돌아온 그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절대로 산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제선에서 제우로 고쳤다. 이후 수도와 종교체험을 경험하며 동학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그는 1859년 고향으로 돌아와 동학창시 작업의 마무리에 들어간다.
1860년 4월,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유,불,선 전통의 합일이라고 주장하며 시천주 교리를 중심으로 포교활동을 전개해나간다. 동학교도들의 교세가 날로 커지자 조정에서는 ‘민심을 현혹시킨다’ 하여 나라가 금하는 종교로 규정하고, 1862년 9월 교조 최제우를 경주에서 체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수백명의 제자들이 석방을 청원하여 무죄로 방면하고, 그 후 교세는 더욱 확장된다.
1863년에는 교인 3,000여명, 13개의 접소를 확보하게 된다. 이 해 8월에 최시형에게 도통을 전수하고, 제2대교주로 삼는다.
다음해인 1864년에는 동학의 교세가 날로 확장되자 조정에서는 최제우를 잡아들일 것을 명하여, 그해 11월, 최제우는 경주에서 체포되고, 사도난정의 죄목으로 3월에 대구에서 순교한다.
2. 사상의 시대적 배경.
조선말기의 철종시대는 나라 안팎으로 변화가 휘몰아치는 격변기 였다. 안으로는 삼정의 문란으로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홍수, 지진, 역질 등이 창궐하여 전국적으로 농민반란이 나타나던 시기였으며, 밖으로는 이양선의 출현과 천주교의 전래로 전국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게다가 서양과의 전쟁에서 중국의 잇따른 패배소식은 조선의 백성들이 불안에 떨기 충분한 사건들이었다. 또한 사상적으로도 주자학의 유일한 사상체계가 해체되고, 새로운 역사적 변동에 조응하는 사상적 다원화의 시대가 도래하는 시기였다. 위정척사상과 개화사상이 근원적으로 전통 유교를 모체로 하는 사상조류라고 한다면 유교자체에 대한 이단으로서 기독교의 침투가 있었고, 또 그것에 대한 안티 이데올로기서 등장한 것이 동학사상이다.
동학은 1860년 4월에 최제우가 창도한 종교로서 그 교지가 시천주 신앙에 기초하면서도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을 내세운 점에서 민족적이고 사회적인 종교라 할 수 있다. 동학이라는 명칭은 교조 최제우가 서교인 천주교에 대항하여 동방의 도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며, 1905년 손병희에서 천도교로 개칭되었다. 창도 당시 동학은 시천주 신앙을 중심으로 모든 서민이 내 몸에 한울님을 모시는 입신에 의하여 군자가 되고 나아가 보국안민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나라구제 신앙이었으나, 2대교주인 최시형에 가서는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해야 한다’는 사인여천의 가르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산천초목에 한울님이 내재한다고 보는 범신론적 사상으로서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3대 교주 손병희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교지로 선포하였다.
3. 동학의 교육사상
1) 인본주의 교육사상
: 시천주 사상 (신분,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자기 몸 안에 한울님을 모신 존재)에서 알 수 있는, 인간존중, 인간평등 사상.
1. 최동희 저, 《한국의 사상가 12인: 제9장》, 현암사, 1981.
2. 최영 저,《근대 한국의 지식인과 그 사상: 제1장》, 문학과 지성사, 1997.
3. 조현규 저, 《한국의 윤리사상: 제6장》, 중문, 2001.
4.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강좌 한국철학》, 예문서원, 1997.
5. 김철호 외 엮음,《세계의 사상 100선》, 녹두, 1992.
6. 박영규 저,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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