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인과 게르만인의 씨 족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11세기 웨일즈의 법률에서 전체 촌락 사람들이 공동으로 토지를 경작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부부관계에서도 결혼 후 7년이 지나지 않았으면 이혼할 수 없다거나. 이혼 후 아내가 재혼했을 지라도 첫 남편의 요구가 있으면 돌아와야 한다는 등의 특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유산 분배에서 적자와 서자의 차이가 없다는 점등에서 11세기 켈트인들 사이에 대우혼 가부장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자리잡은 시기인 단혼과 그 이전의 일부다처(一夫多妻)혼의 과도기적인 단계로, 모든 혈족간의 성교를 금지하며 일부일처제를 통한 가족의 성립을 말한다.
이 있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2) 아일랜드 씨족
아일랜드 씨족의 존재는 17세기 법학자들에 의해 확인되었는데 토지는 17세기 직전까지도 ‘클렌’이나 씨족의 공동 재산의 형태로 있었으며 성원이 사망한 경우 그 토지는 재분배되었다. 이 씨족은 ‘동아리’ 형태로 존속하기도 했는데 이들이 파벌로 나뉘어 있는 점은 잉글랜드인들이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3) 스코틀랜드의 씨족
스코틀랜드 씨족제의 형태는 연구의 여지가 있으나 그것이 씨족제의 한 고리였음은 의심할 바 없으며 그 전기에는 모권 사회의 형태였음이 보여진다.
2. 게르만인
민족의 이동이 있기 전까지 게르만 인은 씨족의 형태로 있었으며 기원 후 수세기 전에 도나우강, 라인강, 비스툴라강과 북해 사이를 점령하고 있었으며 키브리인과 튜톤인의 경우 이동 중에 있었으며 수에브인은 씨족과 친족집단으로 분포했다. 어떤 경우에는 로마에 정복된 지역에서도 이들은 씨족 별로 정착해 있기도 했으며 또한 이들 게르만 인들에게서 ‘Kuni라는 씨족을 의미하는 공통 용어가 보여지기도 한다. 멕시코와 그리스인의 경우처럼 게르만인의 경우 기병대와 쐐기형 보병은 씨족 집단 별로 전투 대열을 형성했다. 특징적인 것은 이들이 어머니편 아저씨와 조카의 유대가 부자간의 유대보다 더 신성하고 긴밀한 것으로 간주했는데 이는 모권 시대의 유물로 보여진다. 어머니편 아저씨와 조카 사이의 긴밀한 관련성은 그리스의 경우 영웅시대의 신화로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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