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과 정신개조 탈정치화된 농민의 성장

 1  새마을운동과 정신개조 탈정치화된 농민의 성장-1
 2  새마을운동과 정신개조 탈정치화된 농민의 성장-2
 3  새마을운동과 정신개조 탈정치화된 농민의 성장-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새마을운동과 정신개조 탈정치화된 농민의 성장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박정희와 그가 집권하던 시대는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평가가 엇갈리는 주제 중 하나이다. 그리고 박정희의 주요 업적이라 할 수 있는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의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중요한 사건이다. 새마을운동의 핵심적인 목표는 박정희에 따르면 한마디로 “잘 살기 운동”이었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와 매우 깊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박정희에 대한 시각만큼 다양한 관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여기에 더하여 많은 의미들이 덧붙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새마을운동은 또한 ‘정신혁명 운동’, ‘정신계발 운동’, 그리고 ‘행동철학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정신개조를 통한 근대 인간형 창조는 5월 16일 쿠테타와 더불어 박정희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문상석(2010)의 『새마을운동과 정신개조 : 탈정치화된 농민의 성장』이라는 글에서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비판과 지지라는 이분법적인 도식을 넘어서 그 운동이 성공적이었으며 단군 이래로 한국 사회를 변화시킨 하나의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새마을운동 참여자들에 주요 관심을 둔다. 이 글에서는 새마을운동 참여를 통해서 성공을 경험함으로써 근대적 자아로서 정체성을 확립한 농민들을 연구한다. 여기서 이 연구가 새마을운동에 대해 정당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본론
이 연구에서는 새마을운동을 역사적으로 우연히 나타나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국가와 정권에 의해서 추진된 대규모의 운동으로 전제한다. 새마을운동은 농민의식을 개조하고, 노동 간의 소득 격차와 농촌 해체과정에서 오는 정치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유신 이후 등장한 체제 정당성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극복하려고 했던 박정희의 욕구와 환경 개선과 그것을 통해서 잘 살고자 했던 농민들의 욕구가 우연히 일치되어 나타난 것이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던 시기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후에 강한 물리적 폭력의 수단을 독점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자신의 정책을 시민사회 속에 침투시킬 수 있는 하부구조권력이 약한 존재로서 정의된다. 그래서 국가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농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참여를 유도하고 강압하는 강한 국가의 압력 아래서 한국의 농민들은 저항 혹은 순응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변화시키거나 그대로 유지하는 행동을 보였다. 정체성의 변화의 강한 독립변수는 자신이 참여했던 사업에서 성공한 경험이다. 성공의 경험은 후에 농민들이 국가가 주도하는 사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근거를 제공했다.
새마을운동의 시작을 새마을가꾸기로 보는 경우가 많다. 새마을가꾸기는 잘살기 운동뿐 아니라 정신개조 운동이었다. 새마을운동의 참여자들 대다수에게 새마을운동에 대해 질문할 경우 새마을운동이 성공했다고 자찬하는 경우의 대다수는 통일벼와 농촌 환경 개선 사업에 대한 성공의 경험과 확신이 있었다. 통일벼는 새마을운동으로 농민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새마을운동의 상징적인 존재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을 시작하기 이전에 통일벼가 개발되었다는 점,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을 당시에도 보급률이 16%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보면 통일벼로 인한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은 실은 새마을운동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새마을가꾸기운동에서 초기 목표했던 것보다 가시적으로 성공한 모습을 보이자 이는 농민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처음에 마을길을 넓히거나 농로를 확장하는 데 큰 이견을 보이고 저항을 했었던 농민들은 수동적 협조가 아니라 적극적인 협조로 태도를 바꾸었다. 자신들의 헌신과 참여를 통하여 이루어낸 발전을 바라보는 농민들은 그 참여의 기억을 간직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이렇게 새마을운동은 가시적 주민욕구 사업의 실천→자신감 고취→마을 발전 성취의 선순환 결과를 가져왔다.
새마을가꾸기사업의 시작과 더불어 나타난 가시적 성과는 박정희를 충분히 고무시켰고, 그는 그 이전부터 자신이 가져온 근대화를 위한 정신개조 사업에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정부의 정신개조 사업을 위해서 국가가 시도한 것은 새마을운동 교육을 체계화하여 교육을 통한 변화를 시도하였다는 것이다. 새마을 교육은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새마을 정신으로 근대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에 주된 목적이 있었다.
새마을가꾸기사업에서 새마을운동으로 변할 때, 많은 사람들은 농촌 잘살기 운동으로서 새마을운동을 인식하였다. 하지만 박정희 개인의 목적은 잘살기보다는 새마을 정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농민의 정신을 개조하는 사업으로 변화하였다. 새마을운동의 변질과 국가 동원의 이데올로기화된 새마을운동은 만일 농민의 참여와 초기 성공의 기억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시도였다. 국가는 농민에게 정치적 권리보다는 국가의 부름에 충성하는 개인으로서 자아를 설정하도록 유도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농민을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로 지속화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들의 믿음은 총선과 대선에서 여당과 박정희에 대한 농촌에서의 지지를 이끌어 내었다. 새마을운동을 본격적으로 시행했던 1972년은 중화학 공업의 육성에 거의 모든 투자를 했던 시기지만, 새마을운동의 이데올로기는 농민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국가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동의를 하도록 이끌었다.
결론
많은 새마을운동 연구들이 잘살기 운동으로서 새마을운동을 부정적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농민 부채의 꾸준한 증가와 지속적인 이농 현상의 측면에서 농촌 살리기 운동으로 새마을운동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실패한 운동이었다. 환경 개선 사업으로서 시골 구석구석까지 버스가 다니거나 개선된 가옥에서 사는 것,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 등을 제외하고 농민들에게 남은 것은 부채였다. 실패한 운동이 성공한 운동으로 변질된 것은 경제 위기와 사회변동의 격동 속에서 정권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박정희에 의해서 위로부터 추진된 근대화 운동이었다. 왜냐하면 박정희에게 경제 발전과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이들은 군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근대적 신민, 즉 국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 위로부터 혁명적인 조직 동원으로서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아래로부터 자발적 참여를 통하여 새마을운동에 기여하고 성장한 집합적 농민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새마을운동이 새마을가꾸기에서 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자신들의 성공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새마을운동이 성공을 거뒀다는 자부심을 지니게 되었다. 이를 통해서 국가가 요구하는 모든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이는 정권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성장은 명령과 순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아실현이나 자기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 주체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다. 농민들은 국가의 이름과 요구에 자신들의 희생도 불사하는 존재로 전환되었다. 타인에 의해서 이끌어지는 존재로서의 농민의 성장은 한국 현대사에서 왜곡된 인간상의 모습을 표출하였다.
현대 21세기에는 근대적 개인에서 시민으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때이다. 여기서 시민의 출현에는 시민됨이 나타나야만 한다. ‘시민 만들기’는 참여와 성공을 통한 새로운 자아로서의 정체성의 확립과 그로 인한 행동이 나타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는 우리사회에서 민주사회를 건설하는데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