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정희 집권 후의 국내 양상(유신체제를 중심으로)
2)한미 관계의 양상
2.유신체제의 종말
1)부마항쟁과 10․26
3. 10‧26의 결과
1)12‧12 군사 쿠테타
2) 신군부의 정권장악
4.유신체제의 결말은 10‧26보다 더욱 민주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 질 수 있었다.
1)반유신 참여 인사폭의 확대
2)김재규 등 정치 고위직 인사들의 지원
3)미국의 반박정희 입장 강화
5.결론
1967년 5월 3일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 후보는 당시 국민들의 경제 개발에 대한 기대와 상대 후보였던 윤보선의 우유분단함에 영향을 받아 재선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후 치러진 6월 8일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기존의 국회의원선거법 시행령을 고쳐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무거운동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지방유세에 나서지 않겠다고 확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지역개발을 위한 각종 선심공약을 남발하여 결국 개헌선을 상회하는 129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둔다. 이는 집권 여당에 의한 명백한 불법선거였고 이 불법선거에 대한 규탄 시위는 6월 12일부터 대학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정부는 대학에 휴교령을 내려 대응했다. 그러나 불법선거에 대한 반발은 더욱 거세어졌고공화당은 가장 큰 반발이 일어난 지역의 의원을 두 차례에 걸쳐 제명했으나, 여론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았다. 중앙정보부는 6․8부정선거를 희석시키기 위해 동백림 간첩단 사건 등을 조작하여 이를 무마하려 한다. 그리고 다음해 1월 21일 북의 무장 게릴라 31명이 휴전선을 뚫고 청와대 부근까지 침투한 사건과,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 호의 나포 사건은 남북간에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만들게 되고 11월의 울진/삼척 일대에 북한의 무장게릴라들의 침투는 반공체제와 박정희 정권을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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