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사서의 기록
Ⅲ. 요서경략설의 긍정론과 부정론
Ⅳ. 맺음말
을 공격하기 시작하여 분서왕(汾西王) 7년(298) 낙랑군의 서현을 취한다.(《삼국사기》 고이왕 13년조 및 분서왕 7년조) 이어 346년 근초고왕(近肖古王, 재위 346~375) 때는 지금의 중국 요녕성 여현과 북경 사이를 정복, 요서(遼西), 진평(晋平) 두 직할군을 설치하여 660년 백제 멸망때까지 250여년 간 통치하였다는 주장이다.
요서경략설은 당시 중국의 여러 사서들에 기록되어 있는데, 주요 전거(典據)는 다음과 같다.
"백제는 원래 고구려와 같은 뿌리로서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있다. 후에 고구려가 요동을 취하자 백제도 요서를 취했다. 백제가 다스리던 지역을 진평군과 진평현으로 불렀다." 《송서》 중국 남조(南朝) 송(宋)의 정사(正史). 《제기(帝紀)》 10권, 《지(志)》나라 30권, 《열전(列傳)》 60권, 도합 100권. 487년 남제(南齊) 무제(武帝)의 칙명(勅命)에 따라 심약(沈約)이 488년에 편찬을 완성한 것으로 송나라 60년(420∼478)의 역사를 기록하였으며, 중국의 사서(史書) 중 가장 권위 있는 25정사에 들어간다.
"백제는 원래 고구려와 같은 뿌리로서 요동 동쪽에 있다. 진나라 때 고구려가 요동을 취하자 백제 역시 요서를 취해 요서, 진평 두 군을 두었다. 백제의 자치군이었다."
《양서》 629년 당나라 요사렴(姚思廉)이 편찬한 양(梁)나라의 정사(正史). 총 56권. 본기(本紀) 4(6권). 열전(列傳) 49(50권). 중국의 24사(史) 중의 하나로서 남조(南朝) 양나라의 사대사적(四代事蹟)을 기록한 사서(史書)이다.
이외에도 백제의 요서경략 기록은 《남제서》 양(梁)나라 소 자현이 남제의 사적을 적은 역사책(歷史冊). 59권
, 《남사》 등 동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여러 사서들에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백제의 요서경략사에 대하여 일본 및 중국의 일부 학계에서는 관련 전거가 남조계 사서들에만 있고, 북조계 사서인 《수서》, 《북사》 등에는 없는 점과 우리 정사인 《삼국사기》 등에 자세한 내용이 없는 점을 들어 이를 회의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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