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서 영유설
1. 들어가며
고구려와 백제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국 각지에 진출했는데, 그 중에서도 백제가 요서 지방을 경략하여 식민지를 두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요서경영설,경략설,영유설,진출설등으로 이야기되는데 이 설은 아직까지도 다양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백제가 정말로 요서지방으로 진출했다면 그것은 대단한 사건일 뿐만 아니라 백제의 군사력과 국력에 대해 재검토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백제의 요서영유설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2.본론
(1) 긍정론
백제가 중국으로 진출했다는 기록은 중국 역사서인 『송서(宋書)』 『송서(宋書)』는 송(宋 : 420~479년)이 멸망한 뒤 9년 만에 편찬되었다. 중국 남조의 제(齊)나라 때 심약(沈約 : 441~513년)이 488년에 기록한 역사서로 중국 남부 지방에 자리 잡고 있던 송나라의 역사를 기록했다.
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1천여 리에 있었다. 그 뒤 고구려가 요동을 공략하여 차지하자 백제는 요서를 공격하여 차지했다. 당시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하였다”라고 하여 백제가 진출한 지역이 진평군을 중심으로 하는 요서 지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남제서』에도 “백제가 군을 두었는데 고구려 동북쪽에 있다”라고 하여 고구려 동북쪽인 요서 지방에 군이 설치되어 있었음을 전한다. 또한 『양서(梁書)』 『양서(梁書)』는 당나라 태종 때인 629년에서 636년 사이에 요사염이 편찬한 역사서로, 502년부터 557까지 중국 남부 지방에 있었던 양나라 역사를 기록했다.
에도 “진나라 시기에 고구려가 요동을 공격하여 차지하자 백제도 요서, 진평군의 땅을 점령하고 백제군을 설치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백제가 요서로 진출한 사실은 488년에 편찬된『송서』백제국전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양서』,『양직공도』 『양직공도』는 양(梁)나라의 원제(元帝 552~554)로 즉위하게 되는 소역(蕭繹)이 형주(荊州)의 자사(刺史)로 재임하던 중(526~536) 작성하였음.
,『남사』 당나라 이연수가 편찬한 중국 남북조 시대의 남조에 대한 역사서
등에 전한다.『남제서』 『남제서』는 514~526년 경 소자현이 편찬
,『통전』 『통전』은 당나라의 재상 두우가 810년에 편찬한 제도사(制度史)
에도 백제의 요서 경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들을 한결같이 고구려가 요동을 공략하자 백제가 요서 지방으로 진출하여 군을 설치해 다스렸다고 전한다.
백제의 요서 진출과 간접적으로 관련시킬 만한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먼저 주목되는 것은 동성왕 10년인 488년 북위(386~535)와의 전쟁을 다룬 “위나라가 군사를 파견하여 침입했으나 백제 군사에게 패했다.” 당시 중국 중원에 자리 잡고 있던 북위가 군사를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했는데 백제가 이를 물리쳤다는 내용이다. 이와 유사한 내용이 우리 나라 『삼국사기』처럼 중국 고대 역사를 연구하는 기본 역사서인 『자치통감』이나 『건강실록』 등과 같은 중국 역사서에도 등장했다. 당시 북위가 백제를 공격했다는 것은 백제와 북위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북위는 탁발씨라는 사람에 의하여 중국 산서 지방에서 산동 지방 북쪽까지 지배한 강력한 유목국가였다. 유목국가였던 북위가 바다를 건너 백제를 공격할 리는 만무하다. 또한 북위가 육로로 백제를 공격했다면 당시 국경선으로 보아 고구려를 거쳐 왔다는 것이 되는데, 이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백제는 지금의 중국 대륙인 요하나 난하를 끼고 있는 어느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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