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론적 노력을 경주했던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는 경제적으로는 1차 대전 이후 경제대공항을 거치면서 비틀거리며 새 활로를 모색하고, 정치적으로는 좌우 이념의 대립하며 혼란스러웠고, 문화적으로는 라디오와 영화 등 새로운 대중매체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대중문화가 개화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파시즘적 전체주의의 먹구름 또한 위협이 되던 시기였다.
매우 개성적인 그의 사상은 당시의 현상학(現象學)과 신(新)헤겔주의와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으며, 그의 유저(遺著)인 《역사철학의 테제》에는 종말론적 역사관이 보인다. 나치스에게 쫓겨 망명 도중 자살하였다. 저서로 《괴테의 친화력》(1924~1925),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 《계몽》(1961) 등이 있다.
발터 벤야민,
● 논문 주요 내용 ●
1. 19세기 초 사진의 발명이 촉발한 복제기술의 발달이 가져 온 예술의 개념과 기능에서의 변화, 예술의 생산과 수용에서의 변화 양상을 규명하는 것
2. 새로운 예술론을 통해 예술이 파시즘적으로 이용되는 상황에 맞설 정치적 미학을 제시하는 것 (예술의 정치화 강조)
서언
하부구조(생산력, 생산관계)의 변화에서 비롯된 상부구조의 변화는 예술발전경향의 변증법에 의해서 예술 개념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예술 개념에서는 전통적 개념들(창조성, 천재성, 영원한 가치, 비의성)이 제거되고 예술의 정치학에 있어 혁명적 요구를 형성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1. 예술 작품의 복제 : 수공적 복제와 기술 복제
예술작품은 언제나 복제가 가능하였다. 주조나 인각(청동, 테라코타, 주화), 목각(판화), 인쇄(활자), 동판에칭, 석판 등 전통적 복제는 인간의 손을 매개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는 새로운 현상이다. 기술복제는 기계장치에 의한 복제를 말한다. 이러한 기술복제는 전래된 예술작품 전체를 복제의 대상으로 삼았고, 예술작품의 영향에 깊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예술작품의 처리과정에서 독자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 사진, 영화
- 벤야민(1983).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반성완 역,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pp. 197~231.
- 최성만(2006~2007). 벤야민 횡단하기Ⅰ~Ⅳ. 문화과학.
- 진중권(2004). 미학 오디세이. 휴머니스트.
● 궁금한 것들
1. 벤야민은 전통적인 예술 작품과 달리 기술복제에 의한 예술작품에는 아우라가 붕괴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복제된 예술작품이라고 하여 아우라가 붕괴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새로운 아우라로 변형되는 건 아닐까?
2. 벤야민은 영화 관객이 감상의 태도와 비평의 태도를 동시에 지닌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영화 관객의 비평가적 태도는 벤야민의 예측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3.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영화)에서 예술의 정치화 가능성을 찾고 있다. 지나친 낙관적 관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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