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포츠 택견
직선적인 동작을 위주로 하는 태권도에 비하여 굼실굼실 능청거리며, 우쭐우쭐 너울거리고, 는질거리는 독특한 몸놀림 동작을 기본으로 하여 다소 탄력을 주며 부드럽게 움직인다. 이러한 동작은 상대로 하여금 타격점을 흐트러뜨려 공격의 기세를 둔화시킬 수 있고, 상대로부터의 충격을 완화시켜 자기 몸을 보호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탈춤처럼 경쾌하면서 부드럽지만 안에서 나오는 엄청난 힘(뱃심)으로 상대를 일시에 절명시킬 수도 있다.
이런 기예는 북방민족에 널리 퍼져 있던 것으로, 고구려의 무용총(舞踊塚)과 삼실총(三室塚) 벽화에 두 사람이 서서 서로 손을 내밀고 싸우는 자세가 그려져 있는데, 바로 이 기술이 택견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도 한량패들이 전승하였고 무희(武戱)로서 일반화되었다는 것을 그림 등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수박(手拍)수박(手博)수벽타(手癖打) 등의 문헌 기록도 보이나 오늘의 택견과는 다르다. 주먹을 쥐지 않고 손을 편 채로 춤에 가까운 동작으로 하는 것으로 미루어 문헌에 보이는 탁견(托肩)각희(脚戱)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택견의 주요한 인물
근세에 서울 주변에는 택견을 하는 패들이 많이 있었는데, 성(城) 안에 사는 패를 윗대패라 부르고 성 밖에 사는 패를 아랫대패라 불렀다. 같은 성 안의 패라 하더라도 대궐과 가까운 쪽의 패를 다시 윗대패라 하고, 대궐에서 먼 변두리 패를 아랫대패라 하였다.
윗대패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송덕기(宋德基)를 들 수 있는데, 그는 13세 무렵부터 사직동 뒷산에서 택견을 배웠으며, 20세 이후에는 마을 택견꾼들과 함께 삼청동옥동애오개 등의 마을에서 경기를 치르면서 일생을 택견과 함께 살았다. 아랫대패로는 왕십리에 박털백신재영(辛在榮)강태진이 있었고, 구리개패에 박무경김홍식(金弘植)이 있었다.
출처 : http://kr.encycl.yahoo.com
택견의 역사
맨손 격투기에 관한 우리 민족의 기록
고려사, 충혜왕 3년 5월 "왕이 상춘정에 나가 수박희를 구경하였다"
동사강목, "왕이 직접 수박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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