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당기구 확대와 세력관계의 변화 : 농업협동화가 완료된 시점에서 숙청은 지방당이나 인민위원회로 확대되었고, 전국적으로 토착 좌익운동 출신인 당, 인민위원회 간부가 상당수 숙청되었다. 전사회, 국가에 대한 당우위가 원칙이 되었고, 이를 제도화하여 당위원회에 의한 일원적 지도로 정착하여 이것을 모델로 농촌으로, 공장으로 확대되었다. 중국식을 참고로, 천리마운동, 청산리방식, 대안의 사업체계, 새로운 농업지도체계 등에서 북조선 독자적인 노선을 만들었다.
3) 제4차 당대회 : 승리자의 대회 : 제4차 당대회에서 김일성은 북조선 체제 전체를 직접 구상, 설계하였고, 만주파는 당내 최대 유일 정파가 되었다. 군의 만주파화, 당중앙위원회의 만주파화는 당정군의 일체화를 나타내는 사건이었다.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새로운 내각이 출범하였고, 내각은 당정치위원회에 완전히 포괄된 모습이 되었다.
2. 만주파의 당군장악과 당군 일체화
1) 군내 연안계 및 소련계 숙청 : 중국군이 철수함에 따라 소련식의 군내 정치사업방식을 비판하고, 반혁명폭동음모가 꾀해졌다는 혐의를 물어 군내 숙청이 진행되었다. 1960년 9월경 일원적 통제제도로 정착되어 갔고, 군대의 최고 조직은 당위원회가 되었다.
2) 당군관계의 전환과 인민군당위원회 설치 : 민족보위상은 당중앙위원회의 군사부장, 총정치국은 군내 당조직을 지도하는 당중앙위원회의 조직부에 비유되고, 군대 내 당위원회는 집단적인 군사정치적 영도기관이라고 정의되었다. 1962년 12월 군사부문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당군사위원회가 설치되어 4대군사노선이 제시되고, 경제건설과 군사력 강화의 병진정책이 채택되었다. 이는 남방삼각관계와 북방 삼각관계에 동시에 대응한 것이었다.
3) 군사부문에서 민족주의의 강조 : 군내정치사업에서 전환은 교조주의 비판, 정치사상교육, 항일무장투쟁의 전통을 혁명전통으로 승격시켜 소련식을 대체하는 공산주의 교양의 정신적 내용으로 삼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인민군의 창군이념의 일부였던 항일무장투쟁의 전통은 유일한 창군이념, 유일한 로동당 창단이념으로, 나아가 건국이념으로 정식화되었다.
4) 만주파의 군 장악과 당군 일체화 : 4차 당대회는 승리자의 대회, 만주파의 대회였고, 당중앙위원, 후보위원 중 현역군인 전원이 만주파였다. 만주파의 군장악은 철저하였고, 민족보위상, 당군사위원회위원, 인민군총참모장 전원이 만주파였다. 4대군사노선에서 전인민의 무장화는 지방차원의 당군일체화로 나타났다.
3. 사회주의 대고조에서 자력갱생, 국방경제병진으로
1) 제1차 5개년 계획과 사회주의의 대고조 : 강행적 축적체제가 작동하고 있었고, 5개년 계획은 중공업중시에 기초를 둔 초고도 성장노선이었다. 대중의 열의를 동원하는 방식이 상승하여 1958년 6월 집단적 혁신운동에서 59년 3월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한층 더 비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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