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국가경영 신소재 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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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종대왕의 국가경영 신소재 공학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5천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은 지리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예로부터 중국 문명의 강한 영향을 받아 왔다. 실질적으로 한국의 과학의 역사는 중국의 과학사의 한 지류라고 할 수 있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중국의 과학과 기술은 한국인에게 그래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한국의 자연, 기후와 풍토에 어울리게 변형, 발전시켜왔다. 한국인은 중국의 선진적인 과학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언제나 진취적이었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을 한국인에게 편리하고 그 자연에 조화되게 변형시켜온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창조적인 과학 기술의 발전에 있어서 세종대왕의 업적은 실로 대단한 것들이다. 32년의 재위 기간 동안 천문, 역산, 의약, 농업, 도량형과 음악, 그리고 인쇄와 화약기술에 이르기까지 세종대왕의 업적은 다양하고도 뚜렷하다. 이러한 세종대왕의 과학적 업적들과 그의 밑에서 이렇게 많은 일들을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과학자들에 대하여 조사하고, 그러한 것들이 후대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논하여 보기로 하였다.
하늘의 뜻을 읽어내다 - 천문학 -
[동궐도] 1830년대 그려진 천문대의 옛 그림.
그림 한가운데 보이는 관측대가 창경궁 관천대이다.
세종대왕의 천문 역산학에서의 업적을 살펴보려면 우선 어떤 천문 기구들이 만들어 졌는지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1) 간의
- 천문 관측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장치로 세종대왕이 만들어 세운 것으로는 먼저 간의(簡儀)를 들 수 있다. ‘간의’란 이름은 그 전까지 널리 사용된 혼천의(渾天儀)라는 장치보다 개량했다는 뜻에서 간단한 장치란 의미로 붙인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혼천의와 간의를 얼핏 비교해 보면 간의가 더 크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세종 14년(1432) 7월 세종대왕은 신하들과 이야기하다가 정인지에게 천문 기구를 만들 것을 명령하였다. 세종대왕은 먼저 간의부터 만들라고 지시했으며, 이 지시에 따라 정인지가 옛 제도를 연구하고, 이천이 실제 제작을 담당하여 만들어 낸 것은 나무로 만든 목간의(木簡儀)였다. 나무 간의로 천문 관측을 해 보고 자신을 얻은 이들 학자들은 이어서 청동제의 간의를 크게 만들어 경복궁 경회루 연못 북쪽에 높은 대를 세워 그 위에 설치해 놓았다. 많은 엿 기록이 그렇듯 세종대왕 때의 간의가 얼마나 컸는지는 지금 알 길이 없다. 그것은 얼마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던 것으로 보이고, 그 크기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의를 올려 세워 놓았던 강의대의 크기는 알 수가 있다. 경회루 연못 북쪽에 세운 간의대는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높이가 31자, 길이가 47자, 너비가 32자라고 되어 있다. 대략의 높이는 7m에 가까웠고, 가로 세로가 각각 7m, 10m 쯤 되는 크기였던 것이다. 여기 올려 세운 간의였으니, 아마 그 크기에 걸맞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미루어 보건대, 지금 중국 남경(南京)의 자금산 천문대에 남아 있는 중국의 간의와 비슷한 크기였을 것이라고 우선 판단할 수 있다. 중국에 남아 있는 간의는 지름이 거의 2m나 되는 몇 개의 청동 고리들로 구성되어 있다. 세종의 간의 역시 비슷한 크기의 고리들로 만들어졌을 텐데, 한가운데의 적도환(赤道環), 백각환(百刻環), 사유환(四游環)이라는 3개의 고리만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나머지 고리들은 앞뒤로 옮겨 관측을 간편하게 재구성했다는 뜻에서 간의라 부른 것이다. 원래의 혼천의에는 이런 모든 고리가 한가운데로 모두 집중되어서 일부 관측이 어려워지거나 거의 관측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기록을 보면 간의대의 돌대 윗부분은 쇠난간으로 둘러 쌌다고 한다. 높이가 8m이상이니 그런 난간이 없다면 위험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가운데 간의를 세우고 그 남쪽에는 정방안(正方案)을 설치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정방안이란 크기가 4자, 두께가 1치의 판에 수준(水準)장치를 만들고 한가운데는 1자 반짜리 기둥을 세워 방향을 잡는 데 쓰는 장치이다. 간의의 방향을 잡고, 관측의 표준을 정하는 데 사용한 보조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참고자료
전상운 [ 한국과학사 ] ( 사이언스북스, 2000 )
김호 [ 조선과학 인물열전 ] ( 휴머니스트, 2003 )
박성래 [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 ] ( 교보문고, 1998 )
문중양 [ 우리역사 과학기행 ] ( 동아시아, 2006 )
사진출처 [ 인터넷 네이버 이미지 검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