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21세기에선 후자가 우선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저널리즘이)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저널리즘이 제공하는) 정보가 민주주의 작동에 유용했다. 하지만 지난 세기 말 편집자들은(성향에 의해서건, 또는 상황에 의해서건 간에) 수익을 유지하거나 늘리기 위해 뉴스를 점점 더 비즈니스 상황 속에서 정의했다.
‘뉴스’는 상업화 되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과정은 파트2 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있다, 하지만 파트 1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영향을 다룬다.
누구의 권리인가, 그리고 누가 아는가?
“나는 내일 오후 12시에 대통령 직에서 사임 할 것이다. 부통령 포드가 이 곳(백악관 집무실)에서 같은 시간에 대통령으로 취임 할 것이다.”
이 말은 1974년 8월8일 닉슨이 대통령직을 사임하면 한 말이다. 그는 미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임기 중 사퇴한 대통령이 되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이 것이 알려지면서 의심 할 수 없는 진실을 앞세운 인간의 동기로부터 추구된 가장 좋은 저널리즘의 예였다. 리처드 닉슨은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명의 Washington Post 기자인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테인은 ‘워터게이트 침입 사건’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나? ‘워터게이트 이야기’에서 저널리즘은 얼마나 중요했었나? 역사는 움직일 수 있는 연회이다. 하지만 35년 후의 역사는 이미 판결을 냈었을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인터넷 위키피디아 페이지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7500자로 서술하고 있다. 우드워드와 번스테인은 그들의 지위와 이 사건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본문에는 간략하게만 서술되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이것을 대통령과 지도자들에 의해 경멸스럽게 다뤄진 민주주의를 도덕적으로 높은 견지를 갖고 있는 저널리즘이 구해낸 빛나는 사례라고 추정할 권리가 있을까? 또 우리의 확신을 다른 사람에게 확산시키는 것이 불가피한가?
20년 후, 1994년 10월 20일, 영국 Guardian newspaper는 웨스트민스터 출입기자가 쓴 기사를 1면에 실었는데, 그는 런던의 나잇브릿지에 있는 하로드 백화점 회장인 무하마드 알-페이드를 대신해서, 로비활동을 하는 회사인 IGA(Ian Greer Associate)가 두 명의 보수당 의원들에게 의회에 관한 질문을 물어보기위해 건당 2000파운드씩 지불했다고 주장했다. (돈을 받은 의원으로) 팀 스미스와 닐 해밀턴이 공중의 의식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북 아일랜드’의 하급 장관이기도 했던 스미스는 그 주장들이 진짜 사실이라는 추측을 자아내면서 바로 사임했다. 하지만, 해밀턴과 (로비스트)그리어는 Guardian을 명예회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무역과 산업부서의 하급 장관이었던 닐 해밀턴은 저널리스트 마크 벨에 의해 체셔의 타튼에서의 안전했던 자리까지 잃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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