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윤리 신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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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철학과 윤리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신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논증으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디자인 논증(목적론적 논증)인데, 이것은 우리가 자연계를 살펴 볼 때, 마치 누군가가 디자인한 것처럼 그 하나하나가 자연이 수행하는 기능과 얼마나 잘 맞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디자인 논증의 지지자들은 자연적 사물들의 복잡성과 효용성이 바로 이것들을 신이 디자인했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논증은 디자인된 사물과 자연적 사물이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에 기초하는데 이처럼 두 사물 사이의 유사성에 기초한 논증을 ‘유비 논증’이라고 한다. 이 유비논증은 두 개의 사물이 몇 가지 측면에서 유사하다면, 다른 측면에서도 유사할 공산이 매우 클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이 논증을 세 가지 이유를 대며 반박했는데, 그 첫 번째로는 유비가 약하다는 이유에서 이다. 유비논증은 비교되는 두 사물 사이에 강한 유사성이 있다는 점에 의존하는데, 이 유사성이 약하다면 비교에 기초해서 나온 결론도 약해지게 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제작자로부터 디자인된 시계와 꼭 디자인된 것처럼 정교한 인간의 눈 사이의 유사성은 둘 다 정교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기능을 잘 수행한다. 이정도의 애매한 것일 뿐이므로, 이 정도의 유비에 기초한 그 어떤 결론도 마찬가지로 애매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두 번째 반박은 진화론으로도 자연이 지금처럼 완벽한 모습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유비논증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세 번째 반박은 만일 세상이 디자인된 것이라면 꼭 그 디자이너가 전지, 전능, 지선한 신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완벽한 신이 디자인을 했더라면 세상에 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2. 제1원인으로서 신이 존재한다.
세계에 대한 직접 관찰에 의존하는 디자인 논증과는 달리, 제1원인 논증(우주론적 논증)은 우주가 존재한다고 하는 단 하나의 경험적 사실에만 의존한다. 이 논증은 절대적으로 모든 것은 그에 앞서는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생겨났고, 이렇게 원인과 결과로 연결된 고리들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우리는 최초의 원인인 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논증에도 또한 여러 비판들이 따르는데, 그 첫째로 원인과 결과의 시작점인 ‘신’에게는 원인이 없느냐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다고 한 이론은 신의 원인이 없다는 것에서부터 모순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이 논증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영원히 뒤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고, 반드시 제1원인인 신이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는 원인과 결과로 무한히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립하는 것에 비해 왜 과거로 무한히 퇴행해서는 안 되는가? 세 번째는 유비논증의 비판에서도 나왔듯이 ‘이 신이 과연 전능, 전지, 지선 한가?’ 에 대한 물음이다. 물론, 제1원인이 된다는 것에서 ‘전능’은 증명된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전지하거나 최고선인 신에 대해서는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다.
3. 신은 정의상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존재론적 논증(아프리오리 논증)은 증거에 전혀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앞의 두 가지 논증들과 아주 다르다. 이 논증에서 신의 존재는 ‘신은 최고 존재이다’라는 정의로부터 필연적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이려는 시도이다. 존재론적 논증은 신의 존재에 대해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을 확신시켰을 뿐이지만, 문제는 이 논증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정확히 지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존재론적 논증에 대한 첫 번째 비판은 상상속의 완전한 존재(즉, 이 논증에서는 신을 말한다.)가 과연 현실로 존재한다는 결론은 뒤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존재론적 논증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정당화하는 듯이 보이므로 쉽게 말도 안 되는 논증인 것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논증의 옹호자들은 이런 반대에 대해 상상속의 완전한 사물은 현실에 존재할 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신의 경우에는 다르다고 말하며 반박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직면해야할 또 다른 비판이 있는데, 존재는 속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총각은 미혼의 남자로 정의될 수 있고, 미혼임은 총각을 본질적으로 한정하는 속성이 된다. 만일 여기서 ‘총각들이 존재한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총각들에 대해 추가적인 속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존재는 미혼이라는 속성과 같은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존재론적 논증에 적용시켜 바라보면, 이 논증이 저지르고 있는 실수는 신의 존재를 마치 또 하나의 속성인 것처럼, 즉 전지함이나 전능함의 속성처럼 다룬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은 존재함이 없이 전지하거나 전능할 수 없으므로, 신에 대해 정의하는 것 자체만으로 우리는 이미 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 된다. 세 번째 비판으로는 앞에 두 논증에서 나왔듯이 악이 현존함에 있어서 지선을 가진 신이 과연 존재 하느냐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악의 존재에 대한 비판은 유신론자들이 기술하는 신의 존재를 결정적으로 반증할 수 있고, 선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적어도 한 가지의 매우 강력한 논증에 해당한다.
Ⅱ. 악은 왜 존재하는가
1. 악은 더 커다란 선을 낳는다.
빈곤이나 질병이 없다면, 테레사 수녀와 같은 이의 위대한 도덕적 선을 불가능했을 것이고, 전쟁, 고문 및 잔혹행위가 없었더라면 그 어떤 성자나 영웅도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악의 현존이 결국 더 큰 도덕적 선을 낳으므로 정당화된다는 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