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원은 당대 뛰어난 문장가로 당송팔대가로 일컬어 지며, 중당시기에 한유와 더불어 고문운동(문학에서 변려문을 배척하고 선진, 양한 때의 고문을 부흥시키자는 운동)을 주도한다. 그는 한유와 달리 도와 함께 문을 중시하였구요, 유교 불교 노장사상(노자와 장자의 사상. 무위자연을 도덕의 표준으로 하고, 허무를 우주의 근원으로 삼는다. 예(禮)를 통해 세상을 교화하려 한 유가(儒家)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다.)제자학설(도가)를 참작하고 신비주의를 배격한 자유, 합리주의 적인 입장이었다.
그의작품으로는,《봉건론(封建論)》,《영주팔기(永州八記)》,《비국어(非國語)》,《시득서산연유기(始得山西宴遊記)》등이 있고, 《유하동집(柳河東集)》,《외집(外集》,《보유(補遺)》 등의 문집이 있다.
유종원의 작품으로는 동물 벌레를 내세워 당대 현실 풍자한 우언문과 산수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면서 자신의 불평, 불만을 상징적으로 토론한 유기문이 가장 뛰어나다.그는 오랫동안 곤궁한 지역에서의 강직생활로 하층민들의 생활상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 하층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민들에 대한 동정과 봉건통치자들의 추악한 행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여 현실적인것에 대한 관심이 많고 이런식으로 그의 작품은 현실을 비판한 작품이 많습니다. 이렇게 현실적이고 강한 이미지가 많지만 그는 왕맹위류(王왕유孟맹호연韋위응물柳유종원)라고 일컬어지는 자연파 4시인중 한명인데요,
그가 있었던 유주는 산수와 풍경이 뛰어나 시간이 생기면 항상 산수풍경을 감상하고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시문짓기를 즐거움으로 삼았고 한적한 전원산림의 생활을 노래한 전자연시를 지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의 글의 내용과 형식미를 동시에 강조하였는데, 이것이 고문운동가로서의 유종원이 주장한 도와 문사를 중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필요없음)우화를 독립적인 문학형식 완성시켰다. 과거 문인들이 우화를 단순히 문장의 일부분으 로만 생각하고 있던 사고방식을 개변시키고 우화를 완전하고 독립적인 문학형식을 완성시 켰다. 강직 된 후 영주로 내려가 쓴 유명한 풍자소품인 는 증오스럽고 비루한 인간 의 모습을 우화의 형식으로 잘 나타나있고, 이 외에도 당시 사회와 정치의 부패현상을 풍자 한 다수의 우화작품을 남겼다.
2. 작품소개-捕蛇者說
유종원이 영주사마로 좌천되었을 때, 뱀 잡는 사람인 장씨의 이야기에 기탁하여 당시 가렴주구로 인하여 고통 받는 백성의 모습과 가혹한 정치를 풍자한 글이다. 안사의 난 이후에 당시 지방의 백성들은 가혹한 세금을 못 이겨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장씨는 자손 3대째 조세를 면제받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뱀 잡는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이를 목격한 유종원은 백성들의 비참한 실정과 관리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에 대한 개선책을 건의하고 싶었지만 좌천된 처지였으므로 이 글로 대신한 것이다.
이 작품은 논변류 중에서 설(說)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설(說)’은 ‘논(論)’과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설’은 ‘논’보다는 자신의 의사를 좀 더 자세하고 여유 있게 표현하기 때문에 문체가 유연하고 사실적 느낌을 가지게 한다. ‘논’이 직유적이고 간결하게 쓰였다면 ‘설’은 우의(寓意)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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