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분야에서 세종대왕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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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분야에서 세종대왕 바라보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자기분야에서 세종바라보기... 흥미 있는 주제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분야에서 세종을 바라보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정치나 문화 쪽 어디를 살펴보아도 금속공예분야에서 세종의 업적이란.. 매우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은 금속공예에 국한되어 찾기보다는 금속공예를 활용한 어떤 것 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찾다보니 세종 때에는 과학기술을 장려했고 그때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어떤 커다란 조형물이라고 할 만한 발명품들이 발명되곤 했다. 그렇게 찾은 것이... 금속활자 경자자와 해시계, 간평일구, 혼천의다.
금속활자 경자자
경자자는 세종 2(경자·1420)년에 계미자의 단점을 보완하여 주성된 동활자이다. 주조기간은 세종 2년 11월에 착수하여 7개월이 걸려 완성하였다. 자본은 계미자의 자본과 같이 경연 소장의 「시」, 「서」, 「좌씨전」 등으로 하였으나, 계미자가 남송본의 자체를 바탕으로 한데 비하여 경자자는 원대 전후 무렵까지의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자체에 해당된다.
주조된 활자는 대자와 소자였으나, 자수는 알 수 없다. 활자의 모양은 네 면을 낸 추형이었으며, 크기는 대자 1.1 1.3㎝, 소자 1.1 0.6㎝이었다. 경자자는 계미자에 비하여 한 단계 발전된 활자였으나 갑인자에 비하면 주조의 솜씨와 활자모양의 정연한 정도가 훨씬 떨어진다. 활자의 모양은 계미자가 밀랍에 잘 식자될 수 있도록 끝을 둥근 추형으로 만들었던 것에 비하여 경자자는 네 면을 낸 추형의 활자로 만든 것이다. 경자자의 조판술은 계미자에 비하여 계선이 위아래 변에서 떨어지는 고착식 인판틀로 개량되었으나, 갑인자의 조립식 인판틀에 의한 조판술에 비하면 활자의 크기가 일정치 않아 옆줄이 잘 맞지 않고 다소의 출입이 있다. 그러나, 인쇄의 능률은 계미자에 비하여 크게 증가되어 하루에 20여지를 인출해낼 수 있었다.
그밖에 조선시대 최초의 납활자인 병자자와 동활자인 갑인자 가있었는데 그중 갑인자는 정교함이 뛰어났다고 한다.
해시계
해시계를 일구라고 한 것은 이것이 모두 해 그림자로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일구들은 모양과 기능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인 혜정교와 종묘 남쪽 거리에 설치됐던 앙부일구는 그 모양이 솔을 받쳐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현주일구와 천평일구는 규모가 작은 일종의 휴대용 시계였고 정남일구는 시계바늘 끝이 항상 남쪽을 가리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릉이다. 장영실 등이 만든 앙부일구는 단순히 해시계를 발명했다는 측면 외에 더 중요한 과학적 사실들이 내포되어 있다. 다른 나라의 해시계가 단순히 시간만을 알 수 있게 해준 데 반해 앙부일구는 바늘의 그림자 끝만 따라가면 시간 과 절기를 동시에 알게 해주는 다기능 시계였다. 또한 앙부일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구로 된 해시계였다. 앙부일구가 반구로 된 점에 착안해서 그 제작 과정을 연구해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가 발견되는데, 그것은 당시 사람들 이 해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간평일구
작도(作圖)가 정확하고, 선들을 세밀히 음각하여, 돌에 새긴 해시계의 반(盤)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간평일구는 대접 모양의 앙부일구(仰釜日晷)를 그대로 평면에 찍어 놓은 형태로, 태양의 고호도(高孤度) 등 13가지의 측정이 가능하며, 서양인 태삼발(態三拔:Sabbathin de Ursis)의 《간평의설 1권(簡平儀說一卷)》을 근거로 제작된 것이다. 남병철(南秉哲)의 《의기집설(儀器輯說)》에 의하면 혼개일구는 명(明)나라 이지조(李之藻)가 찬수(撰修)한 《혼개통헌도설 2권(渾蓋通憲圖說二卷)》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지름 45cm의 원 안에 곡선으로 그려진 경선(徑線)과 위선(緯線)들이 있다. 시간을 잴 때 쓰이는 영침(影針)을 세웠던 구멍이 있으나 영침은 보존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