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 공화국의 성립하나 회와 전두환 정권과 미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1) 비밀 사조직 하나회
핵심적인 정치권력의 공백상태였던 10.26사태의 혼란 속에서도 전두환이 정권탈취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군 내부 비밀 사조직인 하나회 덕분이었다. 하나회는 전두환과 노태우 등이 대위시절이었던 5.16 직후 육사 11기의 영남 출신을 중심으로 조직한 군대 내의 비밀 사조직이었다. 원래 ‘칠성회’라는 이름을 한 친목 모임을 뿌리로 했으나, 전두환이 육사 후배들 가운데 기수별로 선두주자로 판단되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진급과 보직을 챙겨주며 끈끈한 조직으로 키워 나갔던 것이다.
전두환리더쉽(?)이 만들어낸 마피아 집단
신군부의 부패와 비리를 낱낱이 파해쳤던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의 측근들은 전두환이 범한 우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며 증언을 회피했다. 혹자는 그러한 것을 보고 전두환 특유의 리더쉽이 측근들로 하여금 충성심을 이끌어낸 것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미화하기도 한다. 그 점은 강준만의 표현 한국 현대사 산책 80년대 편 1권 中
처럼 ‘과거 그 어떤 군인도 전두환만큼 사조직의 결성과 유지에 공을 들이진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 정확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하나회는 단순한 친목모임이라기 보다는 마피아에 가까운 성격으로 규정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할 법하다. 가입 시 해야 하는 선서내용 ‘모든 사항은 비밀유지가 원칙이며 우리들 사이의 암호는 형님이다.’, ‘만일 서약을 어겼을 때는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는다’ 등
이나 진급 시 서로 간에 밀고 끌어주기를 통해 군 요직을 차지하는 것 등을 미루어 볼 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의 위기도 있었지만
원래 군내에서의 사조직 결성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두환은 그 당시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윤필용 방첩대장 1972~1973, 육군사관학교 8기, 그 당시 박정희에게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었고 후에 수도경비사령관까지 된다. 하나회의 ‘대부’라고 불릴 정도로 경상도 출신의 하나회 후배들을 적극 지원하였다.
에게 찾아가서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정권을 15년 동안이나 지탱했던 것도 15명의 청년 장교 덕이었다.’며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러한 내용을 윤필용이 박대통령에게 은밀하게 전하자, ‘젊은 장교들이 씩씩하고 듬직하니 자네가 잘 키우라.’라는 말과 함께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비서실 3권 中
그러나 윤필용사건 1973년 4월,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술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노쇠했으니 물러나시게 하고 후계자는 이후락(李厚洛) 형님이 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윤필용과 그를 따르던 하나회 후배들이 쿠데타를 모의한 죄로 대거 구속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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