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던 이유
당나라 태종이 선덕여왕에게 위엄이 없다고 평가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그리고 중국 유학중인 자장이 태화못에서 만난 신인(神人)에게서 비슷한 말을 듣는데(삼국유사) 이는 귀신과 같은 존재들조차 여왕의 존재를 달갑지 않게 여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하대에 헌안왕이 선덕과 진덕 두 여자 임금을 불신하며 딸 밖에 없는 자신의 뒤를 사위(경문왕)에게 맡긴다.
한편 최치원은 불교에 지나치게 치중했던 선덕여왕의 정치에 대한 비판을 하는데 여왕 자체에 대한 불신보다는 정책에 대한 비판을 가지고 있었다.
긍정적인 인식 : 김유신이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천신에게 제사를 드리며 한 말을 통해 여왕을 지지하는 세력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의 이치에서는 양은 강하고 음은 부드러우며, 사람의 도리에서는 임금이 높고 신하가 낮습니다. ”(권 41,김유신 열전 상)
김유신은 여왕이 통치를 잘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킨 비담에 대해 군신 관계를 중요시하는 유교의 명분을 들어 비담의 난을 제압하려 했다. 이는 일부 귀족들이 여자를 비하하는 것에 대한 반대의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삼국통일 이후에는 당의 군사적 공격을 받으면서 선덕 여왕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확산된다. 이는 선덕여왕이 대당 외교에서 당당하게 대처한 것을 높이 평가한 때문으로 여겨진다.
또 에 “탑을 세웠다. 과연 삼한을 합했고 군신이 안락함은 지금까지 그것에 힘입음이다.”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선덕여왕은 백제와 고구려의 협공 속에서 국가를 수호하는 위업을 닦았던 왕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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