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의 복지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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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국과 영국의 복지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다양한 이데올로기 차원을 거느린 사회정책의 특성 그리고 20세기 사회정책론 논쟁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사상을 조사하는데 할애하였다. 1980년대 미국에서 보수 성향의 정권이 득세하면서 정치인들은 보다 긴급하게 사회정책을 논의하게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좌파 정책 그리고 1990년대 한층 좌파적 성향을 지닌 정책의 구현은 수월치 않았다(Box 4.1). 사회 현안을 두고 격렬한 이데올로기 논쟁이 벌어졌지만 전통적 정치 이데올로기가 특정 정책 타협안에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두고도 많은 혼란이 일었다.
이건 무엇을 뜻하는가? 영국과 미국 모두 오랜 동안 그런대로 정당간 합의를 거치고 뒤이어 공공 논의가 우파 쪽으로 대폭 기울었으나 새로운 정치적 희망을 구현하는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모습을 보인 듯하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이런 견해들이 소진되고 표면상으론 중도좌파인 정당들이 정권을 잡은 상황 속에서 현재 실시되고 있는 가장 극적인 복지개혁 일부를 보게 된다. 이 장 나머지 지면에서는 이데올로기가 사회정책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본다.
개념: 이데올로기 이론들
이 장 뒷부분에서 보게 되겠지만 사회정책을 다룬 논란의 핵심 요소이기도 한 이데올로기 개념은 사회 이론 내에서 많은 논쟁의 대상이었다.
박스 4.1 미국과 영국의 복지 이데올로기의 동요
미국에서 현대 사회정책의 간선(幹線)은 1932년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29년 발생한 유명한 월스트리트 주식 시장 붕괴 직후 미국을 휩쓴 경제 공황에 대한 실용주의적인 반응으로 뉴딜정책이 탄생하였다. 1980년 뉴딜 정책 합의의 종막을 예고하는 듯한 명확한 우파 프로그램을 들고 나선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미국 내에선 뉴딜정책을 두고 정당을 초월한 합의가 성립되어 있는 상태였다. 한편 의회는 정치적 활기를 상실했으며 복지 프로그램의 극적인 반전을 예측하고 따라잡지 못하였다. 영국에서도 양상은 매우 유사했다는 걸 추적해 볼 수 있다. 영국의 복지국가는 1942년 나온 실용주의적인 비버리지 보고서, “사회 보장 및 결연 서비스"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정책은 1979년 우파 프로그램을 들고 나온 마가렛 대처가 수상에 당선되기 전까지 영국 내에서 오랫동안 정당을 초월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1980년대에 사람들이 예측한 방식대로 이 복지국가가 해체되지는 않았고 의료보장과 사회보장 같은 핵심적인 부문에 실제로 공적자금 지출이 증가하였다.
재미있는 점은 1990년대 두 국가에서 이데올로기로 보면 온건파 지도자인 클린턴과 블레어가 예를 들자면 편모/편부들이 복지 혜택을 벗어나 일자리를 잡게 하는 등 강력한 복지 개혁 정책을 실시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 복지 이데올로기와 복지 정책이 방향이 항상 같은 건 아니지만 얼마나 큰 변폭을 지닐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데올로기 논의를 주도한 두 학자는 칼 맑스와 칼 만하임이다. 맑스의 이론은 자본주의의 성격을 분석한다는 한층 폭넓은 목표를 지닌 반면 만하임은 지식 이론, 즉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받아들여 이해하는 방식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맑스
맑스는 본래 이데올로기는 종교와 마찬가지로 물리적이고 세속적인 세상의 좌절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였으며, 또한 종교는 이데올로기라 주장하였다. 맑스는 이데올로기 사상이 사회정책을 비롯한 특정 사안과 관련된 실제 관계를 오도하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삶을 규정하는 건 의식이 아니며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Marx and Engels 1976). 19세기에 글을 쓴 맑스는 시장 기제가 지배하는 새로운 산업 사회의 핵심은 시장에 나온 상품이라고 느꼈다. 맑스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실제 작업이 인간에게 그 실제 성격을 왜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지 의문을 품었다. 회화, 조각, 축구팀, 양산된 의복 등 실제 작업은 시장에서 그 실제 특성을 상실하고 특성과는 상당히 다른 것 즉, 상품 또는 투자로 전환된다. 맑스는 이런 현상이 실제 세상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이를 이해하는 눈을 대개는 더 나쁜 쪽으로 왜곡시킨다고 암시한다. 인간은 제품이 만들어지는 실제 상황을 평가하지 않거나 때로는 (쓸모 없는 예술품을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잘못된” 이유를 들어 사물의 가치를 평가한다. 시장에서는 심지어 인간도 상품이 될 수 있으며 개체인 인간으로서 특성을 상실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NHS의 내수 시장 발전에 촉각을 곤두세워온 것이다.
맑스는 이처럼 시장 사회 아래서 “삶의 과정(life process)"이 왜곡되는 현상은 다른 관계들 또한 왜곡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일반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회보장은 실제로 보장을 해주지 않을 수도 있고 의료서비스가 인간을 편안케 해주지 못할 수도 있고 교육이 인간에게 더 나은 눈을 안겨주지 못할 수도 있고 전문가들은 실제로 고객의 욕구를 최대한 만족시키지 않을 수도 있고 등등이다. 우리 사회 내 이러한 주요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룬 공식적인 사상이 이데올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