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땐 몰랐지만 통일을위한 경제발전이었죠. 그리고 미국의 핵위협을 극복하고( 자체 핵개발 추진) 투박하긴하지만 우리나라의 질서를 잡고 국민의 역량을 통일을 위한 경제기반 마련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당장 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었습니다. 이런 빠른 발전은 세계에 유래가 없는 것입니다. 수많은 개도국의 실패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급성장에는 부작용도 있게 마련이어서 많은 억울한 희생자를 낳았고 박대통령도 말기엔 권력의 노예가 된 모습을 보여주다가 친구에게 저격당합니다.
또한 표면상으로 받아들인 민주화와 서구식 교육에 영향을 받은 전후 세대들(386세대)의 외면으로 한계를 보여주죠. 그 후 적당한 후계자를 마련하지 못해더욱 임기를 연장하고 싶었을 겁니다. 어쨌든 박대통령은 가시고 후에 전두환 노태우에 의해 통일기반사업은 계속 맥을 잇지만 김영삼 정권이 권력을 잡으면서 끝이 납니다. 오늘날엔 민주화와 서구식교육의 영향이 지대하여 전통의 유교문화가 거의 끝날 지경에 이르고있죠. 이러다간 우리나라의 정체성마저 잃고 미국이나 일본에 편입되게 생겼습니다. 고급인력은 외국으로 가버리고 이게 바로 약소국의 현실입니다. 어쩌다 받아들인것에의해 식민화가되다니.. 어떻합니까? 당장 굶어죽에 생겼고 미국이 도와준다는데 겉으로라도 자유 민주주의라는거 받아들여야죠 그런건데... 그리고 민주화한다고 하여 경제는 파탄나고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아직도 일하고 계시고 통일을위한 역량은 아직도 부족하고... 남북의 공감대인 유교문화는 사라지고 있고.. 빨리 우리나라가 한단계업그레이드되어서 통일을 이룩하여야 할텐데......
*부정적
1937년 4월 1일 박정희는 문경국립보통학교 훈도(교사)가 되었다. 일제의 군인이 될 목적으로 진충보국 멸사봉공의 혈서를 만주 군관학교에 보내었다.
1946년 12월 14일 박정희는 조선경비사관학교 3등으로 졸업 춘천 8연대로 배치되었다. 남조선노당 가입 이후 좌익혐의로 체포되었다. 남로당 조직표등 자술서를 쓰다.
1949년초 백선엽 박정희 구명운동. 정일권, 원용덕, 김정렬(육군항공사관학교 초대교장 뒷날 국방장관)등이 구명운동에 합류. 이후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친일인명사전에 대항한 세력들이 친북인명사전을 낸다고 했었지요..그렇다면 박정희는 2관왕이 됩니다..
5월 18일 조용수 민족일보를 (조용수가 61년 2월 13일 창간되어 폐간될때까지 진보적인 노조를 띔)를 조총련계 돈으로 만들었다는 혐의로 폐간하고 구속. 61년 사형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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