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링우드의 역사 이해
그리스도교 역사관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를 찾아내고자 한다. 이러한 특성은 역사를 사실 그 자체로만 다루어야 한다고 보는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의 실증사학이 볼 때 매우 불합리한 것이다. 실증사학은 역사적 사료의 공정성과 객관적 취급을 강조하는 역사학의 기초가 되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사실 자체를 중시한 나머지 인간을 화석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국헌, “제7강 근대의 역사논쟁”, 한신대 신대원 기독교역사이해 세미나 참고자료, 2008, 1 참조.
하지만 역사를 이끄는 핵심적 동인(動因)이 역사의 내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정신에 있다고 보는 콜링우드의 역사 이해에 입각해서 보면 그렇게 불합리한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믿음이란 인간의 정신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주지하듯이 인간의 사상 형성에서부터 행동에 이르기까지 인간 존재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신앙인의 실존은 역사적 과정에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는 사실, 즉 그리스도교 역사철학의 핵심을 배제할 수 없다.
아래에서는 콜링우드의 역사 이해와 그리스도교적 인간 실존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에 관해 살펴보겠다.
2. 콜링우드의 역사 이해
자연의 과정이 사건(事件)의 과정인데 비해 역사적 과정은 사고(思考)의 과정이다. 앞의 문헌, 3.
자연의 과정처럼 인간의 역사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나 그 둘은 근본적인 차이점을 지닌다. 자연의 경우에는 사건의 내외면(內外面)이라는 구별이 생기지 않는다. R. G. 콜링우드, 『역사의 인식』(서울: 경문사, 1979), 214.
자연의 사건은 단순한 사건일 뿐, 어떤 행위자의 행위가 아니다. 자연은 언제나 단순히 하나의 현상이다. 그러나 역사의 사건은 역사가가 투시함으로써 그 내면의 사고를 식별해 내는 그런 것이다. 앞의 문헌, 215.
역사가들에게 있어서 사건의 원인이란 행위를 통해서 사건을 발생시킨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사고를 의미한다. 그것은 사건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며 사건 자체의 내면이다. 앞의 문헌, 215.
이처럼 역사는 내외면을 갖는다.
또한 자연의 사물은 뚜렷한 동적형태(動的形態)를 보이면서 순환하지만, 인간의 역사에서는 순환한다고 여길 수 있게 하는 요소를 살펴보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고대인은 역사적 과정은 동일한 현상이 되풀이 되는 자연 과정과 같이 시간의 영원한 회귀라고 이해했다. 루돌프 불트만, 서남동 역, 『역사와 종말론』(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8), 74.
루돌프 불트만, 서남동 역, 『역사와 종말론』(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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